[데스크 칼럼] 무기력 뛰어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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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 편집국 해양수산팀장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조건이다. 어떤 이에겐 자신을 채찍질하는 동기, 어떤 이에겐 무기력과 도피의 핑계가 된다. 다 마음 먹기 달렸다. 보통 사람은 오락가락하지만, 뭔가 일가를 이룬 위인들은 대체로 전자에 속했던 이들이다. 하지만 개인이 아니라 어떤 조직이라면, 더구나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정기관이 무기력에 빠져 있다면 심각한 일이다.

부산해수청장 자리 5개월째 공석
국가해양전략비서관 신설도 무산

무기력 해수부 옛 모습 재현 조짐
김 장관 관료사회 개혁 점검 필요

부산과 제주를 아우르는 해양수산부 산하 지방 행정기관 '부산지방해양수산청'이라는 곳이 있다. 현재 부산해수청 청장 자리는 비어있다. 부산항건설사무소장이 대행을 겸하고 있을 뿐이다. 다섯 달째다. 전임 박광열 청장이 지난 6월 한국해양진흥공사로 갑자기 옮기는 바람에 빈 자리를 당시 김창균 소장이 대행으로 메꿨는데, 8월 김 소장마저 싱가포르로 연수를 떠나며 어쩔 수 없이 해수부는 인사를 해야 했다. 해수부는 이때도 청장 자리를 채우지 않았다. 현재 이철조 소장이 청장 대행을 겸하고 있다.

부산항은 국내 수출입·환적 컨테이너 화물 대부분을 처리한다. 부산은 해양수산 관련 기업과 기관이 집적된 곳이기도 하다. 해양수산 기업·기관들은 대행 딱지 붙은 기관장과 어느 정도까지 업무 협조를 구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정작 해수부나 부산해수청은 아무 일 없는 듯 덤덤한 모습이다. 다섯 달째 수장이 공석인데도 잘만 돌아가는 공공기관이라면 부산해수청장 자리는 차라리 이참에 없어져도 좋은 자리 아닌가?

지난 5월 사의를 표명한 방희석 여수광양항만공사 사장 후임 인선도 오리무중이다. 적격자 없음으로 지난 8월 재공모가 이뤄져 후보 3명이 압축됐지만 이후 소식은 없다. 마음 떠난 사장은 다섯 달째 사장직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부산해수청장 자리도 못 채우는데 광양항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던 것인가.

김영춘 해수부 장관이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에게 강력하게 요청했다던 국가해양전략비서관 신설도 쪼그라들었다. 청와대 경제수석실 내 비서관은 경제정책, 산업정책, 통상, 사회적경제, 농어업, 이렇게 5명이었다. 김 장관 요청은 해양수산부와 산업자원부, 농식품부 등 여러 부처에 걸쳐 있는 해양 관련 국가 정책을 조율할 국가해양전략비서관을 신설해 해운재건과 해양강국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올해 지방선거에 출마하느라 신정훈 농어업비서관이 지난 3월 사표를 내 비었던 자리는 지난 6월 서울대 농생물학과 출신 '희망먹거리 네트워크' 농업농촌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전국농어민위원회 정책센터장 등을 역임한 최재관 씨가 이어받았다.

국가해양전략비서관 신설도 무산됐고, 그나마 농어업비서관이라도 해양수산쪽이 맡을까 했던 기대도 무너졌다. 대신 산업정책비서관실에 있던 해운, 항만, 해양 부문 담당 행정관을 농어업비서관실로 배치하면서 비서실 이름을 '농해수비서관실'로 바꾸고, 선임행정관을 해수부에서 파견된 국장이 맡기로 했다. 현재 산업정책비서관실에서 근무하던 전재우 행정관이 국장으로 승진해 농해수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을 맡고 있다. 해수부는 이 정도도 다행이라 만족하는 모양이다.

3선 국회의원 실세 장관이 해수부를 맡으며 문재인 정부가 해양수산에 힘을 실어주리라 기대했던 업계와 시민사회에선 조금씩 김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예의 중앙정부 부처라 하기에 부끄러울 만큼 무기력하던 옛 해수부 모습이 재현되는 것 같다는 지적이다. 국정을 총괄하는 대통령이 정부 부처 하나하나에 신경 쓸 수도 없고, 장관 혼자 정부 부처를 움직일 수도 없다. 관건은 정권과 무관하게 공직을 업으로 삼는 관료사회를 얼마나 자율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해수부는 패기 넘치던 김영춘 장관이 이끄는 해수부로 보기 어렵다. 관료사회에 겹겹이 포위된 것 아닌가? 해수부의 이상과 현실을 재점검하고, 스스로 채찍을 들 때다. 다 마음 먹기 달렸다.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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