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개발 그늘, 해안의 역습] ⑧ 개발 강제 규제 美 체서피크만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연방정부 앞장서 하천 맑게 하니 바닷물도 청정

미국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 하이랜드 비치 인근에 펼쳐져 있는 체서피크만. 이승훈 기자

지난 18일 오전 10시 미국 메릴랜드주 하이랜드 비치. 광활한 해변과 옛 선창 위로 철새 수백 마리가 날고 앉고를 반복한다. 폭만 족히 50m가 넘는 해변엔 나무와 해초가 우거지고, 꽃게들의 모습도 간간이 보인다. 이곳은 미국 해안 생태계 복원의 상징 사례로 꼽히는 '체서피크만'이다.

30년 전만 해도 '죽은 어장'

2000년 이후 완충림 조성해
해당 구역 내 개발 엄격 규제

연방환경청·6개 州 힘 모아
바다 이어진 하천 수질 개선

청어·꽃게·굴 등 크게 늘며
생태계 복원 대표 사례 꼽혀

■난개발이 낳은 부영양화


만의 길이만 512㎞에 달하는 체서피크만은 30년 전만 해도 '죽어가는 어장'이었다. 약 70%에 달하는 만 주변 산림이 도시 개발과 벌목으로 훼손되자 1970년대 초반부터 어류폐사 등이 목격됐다. 1980년대 초엔 물속 질소가 7배, 인이 16배가 급증해 굴, 꽃게, 해조류 등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난개발 속 1972년 허리케인 '아그네스'가 몰아치면서, 엄청난 양의 쓰레기와 퇴적물이 체서피크만을 뒤덮었다. 체서피크만에 걸친 6개 주의 각기 다른 개발 정책 등으로 해안 생태계 복원의 방향조차 잡기 어려웠다.

체서피크만 생태계 복원에 앞장서 온 생태학자 베스 맥기 씨는 "펜실베니아 등 150여 개 주요 하천에서 쏟아지는 농업 비료와 철골 쓰레기 등에 속수무책으로 수질이 악화됐다"면서 "물을 깨끗하게 해 주는 해초류도 면적당 수가 급격히 줄어 자연적인 복원은 불가능한 상태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오염과 어종 감소 등으로 몸살앓던 이 일대가 30여 년 시작된 복원 정책으로 점차 회복되면서 굴 등 해양생물이 늘어나고 있다.
■1만여㎞에 완충림 조성

해양 생태계의 보고인 체서피크만 복원 정책 1순위는 '재산림화'였다. 벌목과 개발로 사라진 산림을 식재 등을 통해 다시 복원하는 것이다. 미국 환경보호청과 각 주정부는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체서피크만 일대와 이를 잇는 하천 주변 1만여㎞에 수질 오염을 막는 완충림 조성을 추진했다. 완충림이 일차적으로 오염물질을 걸러주고 난개발을 막을 수 있다는 데 착안한 조치였다. 현재 7000여㎞에 완충림 조성이 완료됐고, 유역관리계획을 세워 해당 구역에 대한 개발을 규제하고 있다. 또 오염물질이 흘러내리지 못하도록 완충림 지역 일대에 펜스를 설치하고, 무분별한 비료 투기를 방지하기 위해 농어민 교육도 지속적으로 실시했다.

체서피크만의 복원 성공에는 수질오염총량관리제도 큰 몫을 했다. 각 주에서는 정해진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하수처리장 내 질소와 인을 감축하는 고도처리시설을 설치하고, 자연친화적 개발과 에너지 사용에 힘썼다. 수질기준을 달성하지 못한 주는 그 수역 리스트가 대외적으로 공개되고, 개발계획이 보류되는 등 규제를 받았다.

정책이 원활하게 시행되고, 편법을 막기 위한 감시 단체인 CBF(Chesapeake Bay Foundation)도 설립됐다. 각 주정부와 미국 환경보호청의 '중간 다리' 역할은 물론, 체서피크만 실태를 알리고 시민 지지를 얻기 위한 홍보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CBF 멧카프 소통담당관은 "각 주 시민을 직접 찾아 비료 사용 및 개발 규제 등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학생들을 위한 생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면서 "해양 생태계에 비상이 걸린 부산도 민·관 협력의 핵심 역할을 할 시민단체 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체서피크만은 1980년대 복원 정책이 시행된 이후 질소와 인이 각각 23%, 8% 감소했고, 해양 생물의 다양성도 4배나 늘었다. 해양 생태계 자연적 복원의 기초 생물이 되는 청어, 해초, 굴, 꽃게 등도 매년 늘고 있다. 실제 18일 방문한 메릴랜드주 하이랜드 비치 일대에 설치된 어망에는 굵직굵직한 굴이 가득 차 있었다.

■각 주를 잇는 '그랜드 플랜'

체서피크만 생태계를 단기간에 복원할 수 있었던 건 연방정부의 의지와 관계 기관들의 협력 덕이다. 맥기 씨는 "결국 해양 생태계의 인위적 훼손은 각 하천 지류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오염원 때문"이라면서 "하천을 걸치고 있는 지역을 아우르는 복원 계획이 세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체서피크만도 6개 주와 워싱턴 DC, 연방환경청장 등이 협약을 맺고 복원 정책을 추진했다. 1985년을 기준으로 해 질소와 인 부하량을 40% 감축하고, 각 주의 독성물질을 줄이는 등의 대책에 각 기관이 서명했다. 오염저감, 서식처 복원, 토지 이용 등 체서피크만 복원을 위한 목표만 100개에 달했다. 각 지류하천의 수질 복원을 위한 '체서피크만 지류정책'도 세워졌다. 2년마다 정부로부터 성과와 정책을 평가받는 데도 합의했다.

부작용도 있었다. 목표는 같았지만, 지역마다 시행한 우선 정책은 달랐기 때문에 성과가 천차만별이었다. 지역간 역량 차이로 완충림, 어도 복원 등의 성과도 특정 지역에만 한정해 나타나기도 했다. 멧카프 소통담당관은 "해양 생태계 훼손은 해안뿐 아니라 하천의 난개발, 안일한 관리 등이 영향을 끼친다"면서 "연방 정부 등 특정 기관을 중심으로 각 지역 기관을 포함하는 장기간 플랜이 세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버지니아·메릴랜드주=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