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회 요산김정한문학상] 수상작 '생각하는 사람들' 정영선 소설가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우리 사회가 가진 양면성, 탈북민 시선으로 그렸죠"

정영선 소설가는 "책의 모티브가 된 선주 씨와 수지도 기뻐할 것 같다. 특히 수지는 책을 읽고 정신을 차린 것 같다"고 웃음지었다. 김경현 기자 view@

"등단 후 20여 년 간 '요산'이라는 단어를 듣지 않았다면…. 이 소설을 아마 구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고(故) 윤정규 선생을 멀찍이 뵙고 고 김중하 선생을 은사로 모셨으며, 요산 김정한 선생의 얼을 지키려고 고군분투하는 조갑상 소설가(경성대 명예교수)의 활동을 보며 '요산 정신이 뭘까'를 끊임없이 고민했다는 그. 어느 순간 '사람답게 살아라'는 요산 선생의 말씀과 그 정신을 구체적으로 느꼈다는 그는 "삶에 있어, 글쓰는 사람에 있어 요산 정신과 문학은 참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장편소설 <생각하는 사람들>로 제35회 요산김정한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은 정영선 소설가 얘기다.

요산 얘기 듣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 문학 없었을 것

크게 기대하지 못한 수상
소설가로서 살길 열어줘

■"소설가로 살 수 있겠다" 생각 들어


수상 소식을 전화로 전해 듣자마자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정 소설가. 그는 "삶에 타협하지 않고 소설가로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워낙 유명한 분들이 앞서 상을 받아 기대하지 않았다. 수상 소식을 듣고 '내 살 길을 요만큼 열어줬구나'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고 웃음지었다.

교사 출신인 정 소설가가 북한이탈주민(이하 탈북민)에 대한 글을 쓰기로 마음 먹은 것은 2012년. 동래읍성, 산복도로 등을 배경으로 한 글을 쓰며 지역에 천착하던 중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것이 뭘까 고민하다가 탈북민을 떠올렸다. 탈북민이 우리나라를 드러내는 기호이자 상징이라 판단한 그는 곧장 하나원 근무를 지원했다. 당시 경남여고 전교조 분회장이었던 그는 오랫동안 전교조 활동을 한 탓에 당연히 떨어질 줄 알았다고 한다. 주변에서도 전교조 출신을 왜 뽑겠느냐고 타박을 줬단다. 결국 하나원 교사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그는 이곳에서 근무했던 2013~14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수용소 같은 그곳에 발을 디딘 순간 적지에 뛰어들었다는 생각에 해코지 당할까 싶어 잠을 이루지 못했을 정도였다. 늘 감시받고 있었고, 인터넷 접속조차 원활하지 않은 유배지나 다름없는 곳.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통제가 내재화된 탈북민에 시선이 머물렀다.

"시간이 지나니까 저 사람들과 내가 뭐가 다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그는 하나원 근무 당시 문화 교류차 중국 상하이에 방문하면서 소설을 완성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그때 만났던 조선족 출신 유명 여성 작가의 관습을 뛰어넘는 진취적 모습을 보고 스스로 부끄러웠다는 그는 "중국 예술가들이 한국 영화가 변하고 있다며 예로 든 영화가 '무산일기'였다. 그 영화처럼 우리나라만이 드러낼 수 있는 작품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며 "자극적인 얘기가 아닌 탈북자의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양면을 드러내는 작품을 쓰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여성'의 이름으로 역사 읽어내려

소설에 중국 단둥을 넣기 위해 혼자서 단둥 코스를 직접 돌기도 한 그는 2년 간 하나원에서 생활하면서 탈북민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탈북민의 북한 가족 상봉 문제, 여성 탈북민의 짓밟힌 인권 등 예민한 문제와 더불어 탈북민의 정체성을 가장 많이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탈북민들은 필리핀이나 베트남 출신 주민들과 달리 숨어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운다"며 "북한의 풍습과 노래, 과거를 잊으려하고 물질 만능주의에 권력지향적인 남한의 겉모습에만 적응하려는 모습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탈북민의 정체성과 함께 이번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또하나는 바로 '여성'. 북한에서 온 여성들은 그 자체가 역사의 벽을 허문 것이라고 강조한 정 소설가는 역사에 잘 드러나지 않는 소소한 행동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 '여성'이라고 강조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할머니는 경북 예천에 거주 중인 정 소설가의 먼 친척이 실제 모델이다. 6·25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에게 가족을 몰살당했지만 지금껏 혼자 집을 지키면서 팔순이 넘은 지금도 십리 길을 걸어다니며 영어와 컴퓨터를 배우고 글을 쓰고 있다는 할머니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그는 "제주 4·3 항쟁, 6·25 전쟁에 이어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굵직한 역사의 현장은 다 남자들의 얘기다. 권력에서 떨어져 아픔에 다가서는 사람들, 바로 여성의 시선에서 바라봤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탈북민을 어떻게 대하는지, 탈북민이 이 땅에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 탈북민이 이번 작품을 많이 읽었으면 한다는 정 소설가. 차기작으로 일본 오사카에 거주 중인 재일조선인의 삶을 입체적으로 접근하는 소설을 준비 중이다. 그는 "<생각하는 사람들> 후속 격인 새 작품은 한국을 넘어 일본, 만주로 배경을 넓혀 민족에 대한 고민을 깊이하는 작품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