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전인지와 오거돈, 그리고 아시아드CC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손영신 편집국 부국장

전인지가 울었다. 2년 만에 LPGA(미국여자프로골프) 투어에서 우승한 직후였다. 전인지가 더 울컥한 이유는 고국에서 열린 LPGA 대회였기 때문이다. 지난 주 열린 국내 유일의 LPGA 대회인 KEB 하나은행 챔피언십은 전인지의 우승을 끝으로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배턴은 부산이 이어받는다.

내년 가을 부산서 LPGA 개최 
수도권 포기로 국내 유일 대회 
부산브랜드 전 세계에 알릴 기회  

최근 아시아드CC 지분 매각 논란
'오거돈호' 문제점 상징적 투영 
새 권력 아마추어리즘 벗어나야

내년부터 국내 유일의 LPGA 대회는 BMW 챔피언십이란 이름으로 부산 아시아드CC에서 개최된다. 올해 초 부산시와 아시아드CC가 LPGA 대회를 유치할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두개의 LPGA 대회가 열리는 것으로 돼 있었다. 수도권(인천)에서만 개최돼 온 LPGA 대회가 부산에 추가돼 이른바 골프의 '지역 균형발전'이 실현된 셈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내 2개의 LPGA 대회 개최는 무산됐다. 하나금융그룹은 또다른 LPGA 대회의 부산 개최를 사전에 협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LPGA와 결별을 선언했다. LPGA 대회 국내 독점이 무너지자 13년간 이어져 온 대회를 끝내 버린 것이다. 수도권의 독점욕은 LPGA에 통하지 않았고, 아이러니하게 '부산 독점'으로 귀결됐다.

LPGA가 갑질을 했든 하나금융그룹이 속이 좁았든 잘잘못을 따질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제 부산이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가야 한다는 점이다. LPGA 대회는 전 세계에 중계되는, 7만 여명의 구름 갤러리가 몰려오는 대형 스포츠 축제다. '촌동네에 무슨 신공항이냐'는 수도권의 시선은 LPGA 대회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부산은 보란듯이 대회를 성공시켜 부산이란 도시브랜드를 전 세계에 알리고 연관 산업을 부흥시킬 필요가 있다.

그런데 부산의 성공적인 LPGA 대회 개최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당초 2002 아시안게임 개최를 위해 만든 아시아드CC는 부산시가 최대 지분을 보유한 골프장이다. 사실상 오너인 오거돈 부산시장이 LPGA 대회 개최에 부정적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서병수 전 부산시장이 유치한 대회라는 점이 이유로 거론됐다. 여기에 오 시장은 지분 매각을 통해 아시아드CC를 민간에 넘기려 하고 있다.

아시아드CC를 둘러싼 이같은 기류에는 현재 '오거돈호'가 노정한 몇가지 문제점이 상징적으로 투영돼 있다.

첫째, 오 시장은 전임 시장의 정책을 뒤엎는데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신공항과 오페라하우스, BRT(중앙버스전용차로)등의 현안이 여기에 해당된다. LPGA 대회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문제는 제대로 뒤엎지도 못하고 결국 행정력만 낭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 시장 취임 이후 100일이 지났다. 부산시민들은 권력교체를 선택했고, 그 기대감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하지만 체감하는 것은 별로 없다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기대한 '혁신'과 '역동'은 찾아볼 수 없고, 전임 시장의 정책에 대한 '숙의'만 하다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통상 새로운 권력은 취임 초 지지도가 높기 마련인데 오 시장에게는 이같은 상식이 비켜갔다. 리얼미터가 광역단체장 취임 100일을 맞아 직무평가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오 시장의 지지도는 36.1%로 17개 광역단체장 중 16위였다. 이 정도면 '오거돈호'를 탄생시킨 부산 여권의 총체적 각성이 필요하다.

둘째, 아시아드CC 매각 추진의 근저에는 골프 그 자체에 대한 오거돈 지지세력의 반감이 작용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들에겐 골프는 여전히 귀족 혹은 부자스포츠일 뿐이다. 굳이 골프장을 팔아 시민행복재단을 만들겠다는 오 시장의 공약도 그렇게 해서 나왔다. 그러나 골프는 이제 대중스포츠로 자리잡았다. 국내 골프인구는 500만 명으로 스포츠 종목중 가장 많다. 네이버 스포츠에 골프는 야구, 축구, 농구, 배구와 함께 별도의 코너를 갖고 있다. 전인지의 눈물은 한때 그 코너를 도배한 '뉴스'였다. '오거돈호'가 골프를 바라보는 지금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대중과의 소통에 실패할 수 있다. 새로운 부산권력 전반에 드리워진 아마추어리즘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물론 아시아드CC 민영화는 오래된 화두고, 부산시가 그 지분을 보유하고 있을 뚜렷한 이유는 없다. 그러나 서두를 필요도 없다. 그 땅은 부산시가 소유한  도심 인근의 대형 녹지다. 지금 민간에 넘기는 게 장기적으로 시민에게 득이 될지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무엇보다 매각 논란이 LPGA 대회에 걸림돌이 돼서는 안된다. 내년 가을 전인지를 기다리는 부산의 골프팬들이 적지 않다. zero@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