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리 낙동강의 눈물] ⑤ 10만 가지 '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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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마다 공장들, 내뱉는 유해물질만 하루 17만t

지난달 29일 촬영한 대구 달성군 낙동강 강정고령보 아래 금호강과 진천천 합수 지역 모습. 낙동강 본류(왼쪽)와 금호강(가운데) 진천천(오른쪽)의 검은 물 색깔이 확연히 구분된다. 정종회 기자 jjh@

매일 아침 계란 요리를 할 때 쓰는 프라이팬. 주말 나들이 때 입는 기능성 등산복. 생활 필수품이나 다름없는 물건들이지만, 이를 만들기 위해 유해화학물질인 '과불화화합물(PFASs)'이 쓰인다. 일상의 편리함을 가져온 산업발전과 기술 고도화는 이면에 '독'을 품고 있다. 현재 산업계에선 10만 가지 이상의 화학물질이 사용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법적 기준은 이에 한참 못 미친다. 말 그대로 '빙산의 일각'만 관리·감시하고 있는 수준이다.

6월 과불화화합물 사태 충격
낙동강 수계, 유독 농도 높아
그 외 유해화학물질 많지만
종류·배출량 파악조차 안 돼

2002년 100개였던 공단
10여 년 사이 배 이상 늘면서
유해화학물질 배출량도 급증

■공단 '급증' 유해물질은 '폭증'

국내 산업분야 화학물질 배출량은 해마다 증가 추세다. 환경부 화학물질안전원의 전국 화학물질 배출량 조사 결과를 보면 2006년 한 해 4만 7796t에서 2016년 5만 7248t으로 10년 새 20% 늘었다. 200여 종 화학물질과 일부 사업장만 대상으로 한 조사인 데다 '이동량'과 '자가매립량'까지 더하면 실제 화학물질 사용량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인체에 유해한 특정수질유해물질의 배출량 증가세는 더 우려스럽다. 1999년 하루 4만 1000t에서 2006년 24만 9000t, 2014년에는 55만 8000t으로 15년 만에 13배 이상 폭증했다. 낙동강의 경우 2016년 기준 405개 배출업소에서 하루 17만 5500t의 특정수질유해물질을 배출하고 있다. 2000년 이전 17종에서 지난해 29종으로 특정수질유해물질 관리 항목을 확대했지만 배출량 저감 효과는 없었다.

낙동강수계에서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산업단지 역시 크게 늘었다. 2002년 낙동강수계법 제정 이전 공단은 100개(6882만 4000㎡)였지만 이후 10여 년 만에 배로 늘어 2014년 기준 217개(1억 3317만 6000㎡)로 급증했다. 공단 수가 늘어난 영향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가파른 속도로 유해화학물질 배출량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

■빙산의 일각 '과물화화합물'

유해화학물질의 위협은 이미 현실화했다. 올 상반기 소동을 빚은 '과불화화합물 사태'(본보 6월 7일 자 1·3면 보도)가 대표적이다. 부산대 오정은 교수팀은 낙동강유역환경청의 의뢰로 최근 낙동강수계에서 과불화화합물 농도가 급증한 사실을 밝혀냈다.

환경부가 올 6월부터 전국 정수장 51곳과 하·폐수처리장 42곳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낙동강수계(대구·경북 지역)에서 유독 과불화화합물 농도가 높게 검출됐다. 대구성서산단공공폐수처리장은 발암물질인 과불화옥탄산(PFOA)이 최대 4.8㎍/L, 대구달서천공공하수처리장과 대구서부공공하수처리장도 0.242㎍/L, 0.22㎍/L로 WHO 등 해외 기준보다 높게 검출됐다. 다행히 환경부가 고농도 배출사업장을 확인해 과불화화합물을 다른 물질로 대체하거나, 전문업체에 위탁처리하도록 하는 등 현재는 저감조치를 완료한 상태다. 환경부 관계자는 "내년 안으로 산업폐수 배출허용기준에 과불화화합물 항목을 추가해, 먹는물 수질 기준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불화화합물은 잡았지만, 위험은 여전하다. 이번 과불화화합물 사태도 해당 물질만 대상으로 한 '표적 조사' 덕분에 뒤늦게 밝혀진 위험일 뿐, 지금 현재 어디서 어떤 종류의 유해화학물질이 얼마나 많이 배출되고 있는지 현황 파악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구미공공하수처리장의 방류수가 낙동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모습. 역시방류수와 강물 색깔이 확연한 차이가 난다. 한국강살리기네트워크 제공
■환경기준 '사람→생물'로 바꿔야

이에 환경부는 낙동강 유해물질 관리 방안 중 하나로 중·상류 주요 공단을 중심으로 '폐수 재이용 시설'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폐수처리장을 통해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방류수 양 자체를 줄여 그 속에 포함된 오염물질도 줄이겠다는 시도다. 기술적인 문제와 경제성 등을 내세워 일각에선 이견도 있지만, 낙동강 수질을 개선할 수 있는 획기적인 대안으로 기대를 모은다.

더 근본적으로는 환경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우리나라 수질 관련 기준 항목 수는 환경기준 20종(사람 기준), 먹는물 기준 60종, 배출허용기준 55종, 특정수질유해물질 29종 등이 전부다.

사람의 건강보호 기준 항목(20종)수만 살펴봐도 미국(121종), 캐나다(91종), 유럽(45종), 일본(27종) 등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준이다. 특히 수생생물 보호기준은 미국(60종), 캐나다(125종), 유럽(14종), 일본(3종)과 달리 전무하며, 생활환경 기준에 곁가지로 '생물등급'을 설정한 정도다.

실제 강에 유입되는 방류수 관련 기준이 느슨한 것도 문제다. 현재 하·폐수처리장 방류수의 경우 BOD, COD, SS(부유물질), T-P(총인), T-N(총질소), 총대장균군수, 생태독성(TU) 등의 기준만 있을 뿐, 특정수질유해물질 항목은 빠져 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물국토연구부 한대호 박사는 "우리나라 수질은 사람을 기준으로 맞춰져 있는데, BOD·COD가 높아도 웬만해선 사람 생명에 지장이 없다"며 "궁극적으로는 물벼룩 등 수생태 기준을 적용해 수생생물을 보호하면 사람도 자연히 보호받는 방식으로 기준점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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