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 보 설치로 물길 막히자 철새들 발길도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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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리 낙동강의 눈물] 4. 9개의 호수

재두루미의 중간 기착지로 유명한 경북 구미의 해평습지는 칠곡보가 건설되고 난 이후 모래톱이 거의 사라졌다. 정종회 기자 jjh@

2010~2011년 4대강 사업으로 건설된 16개의 보. 이 중 절반인 8개가 낙동강에 들어섰다. 유유히 흐르던 1300리 강줄기는 거대한 '9개의 호수'로 변해 버렸다. 강의 호수화는 물과 뭍, 하늘의 생명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보 인해 모래톱·습지 훼손
안식처 사라지자 철새들 외면
구미 해평습지 두루미 개체 수
8년 새 3000마리→100마리로

공사 이후 '물속 변화'도 심각
어류 개체·종 수 큰 폭 줄어
외래종이 재래종 밀어내기도

■오지 않는 철새들

낙동강 생태계의 '눈에 보이는' 가장 큰 변화는 겨울철새다. 굽이굽이 물길 따라 새까맣게 하늘을 뒤덮은 철새 무리가 강에 내려앉는 장관은 이젠 옛 풍경이 됐다. 보 건설로 모래톱과 습지 등 새들의 안식처 대부분이 파헤쳐지거나 물속에 잠겼기 때문이다.

천연기념물(제203호) 재두루미의 중간 기착지로 유명한 구미 해평습지는 칠곡보가 들어선 뒤, 드넓은 모래톱이 완전히 사라져 새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구미시 '해평습지 철새 모니터링 자료'에 따르면 2009년 겨울 3000마리(흑두루미 2822마리, 재두루미 331마리) 이상이었던 두루미는 4대강 사업 직후인 2012년(991마리) 3분의 1 이하로 급감했다. 2014년 2600여 마리로 다소 회복되는 듯했지만 지난해 겨울엔 채 100마리(흑두루미 90마리, 재두루미 9마리)도 해평습지를 찾지 않아 사실상 두루미 도래지 기능을 상실했다.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생태보존국장은 "두루미는 경계심이 많아 사방이 탁 트인 모래톱 물가에서 잠을 청하는데, 지금은 내려앉을 곳이 없는 상황"이라며 "그나마 감천 합수부 지점에 모래가 다시 퇴적돼 철새들이 조금 관찰되는 정도"라고 말했다.

철새 수 급감은 낙동강 전반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국립생물자원관 철새정보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구미해평 '도흥리~일선교' 구간 철새 수는 4대강 사업 전 2만 마리(2006년 1월)를 넘긴 적도 있지만, 공사가 끝난 2012년 1월엔 3980마리로 뚝 떨어졌다. 사업기간(2010~2011년) 전후 6년간 평균을 비교하면 1만 748마리에서 5801마리, 절반(54%) 수준으로 감소했다. 종 수 역시 41종에서 36종으로 줄었다. 낙동강 '달성~남지' 구간도 2009년 1월 1만 595마리(35종)의 철새가 관찰됐지만 3년 뒤 2438마리(33종)로 뚝 떨어졌고, 지난해 1월엔 2044마리(27종)에 그쳤다.
항공사진으로 보면 칠곡보가 건설되기 전 2008년 드넓은 모래톱이 펼쳐진 해평습지(왼쪽)와 10년 뒤인 현재의 모습이 뚜렷이 대비된다. 다음지도 캡처
■토종 밀어낸 외래종

'물속 변화'도 심상치 않다. 전남대 수산과학연구소 조현빈 연구교수가 2007년부터 10년 동안 낙동강의 같은 지점(왜관, 적포, 물금)에서 같은 시기, 같은 방법으로 어류를 조사한 결과 개체 수와 종 수 모두 큰 폭으로 줄었다. 개체 수는 4대강 사업 이전 평균 511마리(2007~2009년)에서 이후 197마리(2012~2017년)로, 종 수도 평균 21종에서 14종으로 확연히 감소했다.

지점별 상황도 비슷하다. 2007년 왜관 성주대교 부근에서 209마리(18종)의 물고기가 관찰됐지만, 2016년엔 64마리(4종), 다소 늘어난 지난해에도 173마리(8종)에 그쳤다. 같은 기간 적포(적포교 아래)도 172마리(11종)에서 47마리(6종), 물금(수문 부근)은 131마리(12종)에서 63마리(4종)로 4대강 공사 이전 모습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더 심각한 건 외래·이입종이 고유·재래종을 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2009년 25마리, 2010년 126마리까지 관찰됐던 각시붕어, 참몰개, 납자루 등 고유종은 2016년부터 자취를 감춘 반면, 배스와 블루길 등 외래종은 2009년 126마리에서 지난해 180마리로 외려 늘었다. 외래·이입종 비율도 4대강 사업 이전 평균 60.5%에서 이후 84.6%로 급증해 외래종이 낙동강 물속을 점령해 버린 상황이다.

조현빈 교수는 "조개 몸 속에 알을 낳는 납자루아과 종들의 경우 4대강 사업 이후 조개류 개체 수가 줄고 수심이 깊어진 탓에 조개류에 접근을 못해 개체 수 회복이 안 되고 있다"며 "반면에 물 흐름이 느리거나 없는 정수역을 선호하는 배스와 블루길에겐 적합한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낙동강의 외래종 우점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고 설명했다.

어류 생태계 변화는 어민들의 어획량에서도 확인된다. 조 교수가 낙동강 하류 어민들이 기록한 '어획량 장부'를 조사한 결과 한 어민은 2008년(삼락~물금) 경제성 어류인 잉어·붕어·뱀장어를 1290.0㎏ 잡았지만, 2012년부터 어획량이 급감(8.0㎏)해 2014년 이후 아예 조업을 포기한 사례도 있었다.

이대진·이승훈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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