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산책] 무심극락 다정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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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언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

혹시 이조년(李兆年)이란 분 이름 들어보셨나요. 옆집 아잰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더라도 이런 옛날 시조는 생각나실 겁니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다정도 병인 양 하야 잠 못 들어 하노라.' 그래요. 월말고사에 '삼경은 몇 시를 말하는가'라든가 '다음 보기 중 자규의 다른 이름이 아닌 것은' 등이 족보 따라 어김없이 출제되었고 대학 예비고사에도 빠짐없이 춘심이가 명함을 내밀었지요. 총각 시절 여학교에 갓 부임해 이 시조를 가르쳤는데, "작자는 고려문신 이조년!" 하자마자 온 교실이 요즘 말로 빵! 터졌지요. 길에 구르는 돌멩이만 봐도 까르르 웃음이 절로 나오는 나이니 오죽했겠습니까. 요즘 세태 같으면 여성 모욕죄로 고발당해 철창신세를 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실 경상도 사나이답게 마지막 음절 '년' 자에 지나치게 힘을 주어 외친 제 불찰이지요, 뭐.

'다정도 병인 양 하야 잠 못 들어…'
불면의 나락으로 몰아넣는 다정
무심, 무정은 해탈의 왕도 깨달아


참고로 학생 시절 국어 선생님 회초리에 한을 품은 이들을 위해 월말고사 정답을 말씀드리자면, 삼경은 자정께 즉 한밤중을 가리키며, 자규는 두견이로, 불여귀 혹은 귀촉도로도 불립니다. 소쩍새라는 이도 더러 있지만, 소쩍새는 올빼미를 닮은 야행성 맹금류고 두견이는 뻐꾸기 비슷한 작은 새인데, 한을 품고 죽은 촉나라 임금의 영혼이 새가 되어 피 울음을 운다는 슬픈 전설로 우리 옛 시의 단골 캐스터가 되었지요. 소월은 십 오년 정분의 첫사랑을 떠나보낸 사나이 심사를 '불귀 불귀 다시 불귀/삼수갑산에 다시 불귀'라 읊었고, 서정주는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고 저승으로 떠난 임을 조상했지요.

이조년 선생은 원나라가 사사건건 고려조정을 괴롭히던 때에 온갖 모함을 당하면서도 멍청하고 방탕한 왕을 위해 충성을 바친 인물입니다. 이런 시대적 맥락에서 위 시조를 충절의 우의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그거야 모를 일이지요. 그가 노래한 다정이 왕에 대한 간절한 충정인지, 아니면 기생 춘심이를 향한 할배의 주책없는 연정인지는 타임머신을 타지 않는 한 밝힐 길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고전문학 교수들이 이런저런 궤변을 늘어놓으며 생계를 유지하는 거 아닙니까. 아무튼 다정이 병이 되어 사람을 불면의 나락에 몰아넣는다는 탄식은 백번 수긍이 갑니다. 예나 지금이나 정이 넘치는 이는 그 정 땜에 남보다 배나 슬프고 괴로운 법이니까요. 그래서 심수봉도 '사랑보다 더 슬픈 건 정'이라고 애끓게 노래했겠지요.

부산역 광장을 지나노라면 어깨띠를 두른 어르신들이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걸 늘 봅니다만, 나이 들어 부쩍 마음 당기는 게 무심, 나아가 무정이라는 단어입니다. 젊을 때, 좀 어벙한 친구를 두고 "바보는 즐거워"라고 비아냥거렸지만 이제야 그게 바로 섭세(涉世)의 방편, 해탈의 왕도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저도 확성기를 들고 "무심극락, 다정지옥!"의 진리를 고해에서 허덕이는 천하 중생에게 전하고 싶지만, 사이비종교 무심교의 교주로 지목될까 겁이 나 관두었습니다. 사실 이백은 '무정한 사귐 영원히 맺어/다음엔 은하 저편에서 만나세'라 노래했고 조선 시인 송구봉은 '하늘 아래 온 땅이 모조리 안택(安宅)이니/만사에 무심해야 비로소 한가하리'라고 토로하지 않았습니까. 청주 무심천은 아이가 홍수에 휩쓸려가도 그저 무심히 흐른다고 그런 이름이 붙었다지만 어쩌겠습니까. 우리네 희로애락과는 무관하게 자연과 시간은 저 강물처럼 무심히 흘러가는 게지요. 전쟁터에 죄인이 없듯이 이 아귀다툼판에 누가 백로고 누가 까마귀겠습니까.

배운 게 죄라 오늘도 무심, 무정을 되뇌며 고려 시인 이달충이 귀양 가서 지었던 <무심가>를 휘파람 삼아 불러봅니다. 다정이 병이라면 무심은 약이겠지요. '외론 구름 본디부터 무심한지라/두둥실 온 하늘을 떠도는구나./무심하게 동쪽으로 또 서쪽으로/무심히 이리저리 오고간다네./구름과 나 둘이 함께 무심하거니/그대는 언제나 나의 좋은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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