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원전 안전 설비' 특혜성 의혹 진상 밝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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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안전성 강화를 위한 연구개발 과제가 애초 공고했을 때와 비교해 업체 선정 뒤 맺은 협약서나 사업계획서에서 너무 달라져 특혜 의혹이 일고 있다.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은 2013년 원자로 건물 파손 방지를 위한 여과배기계통 개발 과제를 공고하며 기술개발 목표로 '기술성숙도(TRL) 8단계'와 최종결과물로 '시제품'을 명시했다고 한다. 245억 원이 투입된 이 과제는 한국수력원자력 등 5개 사가 참여한 컨소시엄이 선정돼 지난해 5월 끝났다. 하지만 정작 협약서와 계획서에는 TRL 등급이나 시제품 제작에 대한 언급 자체가 빠졌다고 한다.

TRL 8단계는 4년 만에 과제 완성이 어려운 이례적으로 높은 등급이라니 특정 업체를 위해 진입장벽을 만들고, 다시 슬쩍 낮춰준 게 아닌가 의심이 된다. 더 큰 문제는 실물 크기 시제품조차 없어 제대로 된 성능 검증을 못 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국감 때는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이 해당 연구과제 선정 평가위원이 컨소시엄 주관사의 주식을 보유한 것을 지적하며 '기획된' 연구용역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한수원은 올 6월 해당 여과배기계통을 신고리 원전 등 국내 원전 4기에 설치하는 440억 원 상당의 추가 계약까지 맺었다. 이 정도면 짜고 치는 고스톱판이라는 소리까지 나온다.

이번 의혹은 과거 한수원 고리1발전소의 터빈밸브작동기 국산화를 둘러싼 논란을 연상하게 만들어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산화에 성공했다며 137억 원의 제품을 납품했지만 작동이 제대로 안 되자 옛 외국산 부품으로 교체해 관련자들이 1심에서 사기 유죄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 무죄 확정으로 끝난 이 사건에 대해 환경단체는 지금도 고리1호기 터빈밸브작동기를 재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전 국산화 기술은 관련 업체와 한수원 내 담당자만이 핵심 내용을 파악해 검증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한다. 게다가 한수원이나 원자력 관련 연구기관, 업계까지 특정 학교가 카르텔을 강력하게 형성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원전 업계 전체에 만연한 담합 구조를 방치해서는 시민들의 안전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이번에야말로 '원전 안전 설비' 특혜성 의혹의 진상을 확실히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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