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여과배기계통 공정성 논란] 공고 때 턱없이 높은 목표 제시, '특정업체 봐주기'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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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안전을 위해 건물 내부 압력이 높아질 때 방사성 물질을 걸러내고 내부 공기를 내보내는 장치 개발이 당초 공고대로 이뤄지지 않아 논란과 의혹을 낳고 있다. 이 장치는 신고리 원전 등에 우선 설치될 예정이다. 부산일보DB

원전 내부 압력이 높아져도 원전 건물 파손을 막을 수 있어 안전성을 높일 '혁신성과'로 평가됐던 원전 여과배기계통 개발 과제의 논란은 결국 과제공고 당시 과제목표로 'TRL(기술성숙도) 8단계' 등이 제시된 것이 적절했느냐는 문제로 귀결될 것으로 보인다.

과제목표 'TRL 8단계' 정해 
국내기술 '2단계' 수준서 
4년 만에 8단계 완료 어려워 
업체 응모 포기 가능성 충분

"가이드라인일 뿐" 해명에 
업계 "TRL 등급 핵심 지표"

■과제 수행 과정과 결과

2013년 3월 지식경제부와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이하 에기평)은 '2013년도 에너지기술개발사업 중장기 신규지원 대상 과제'를 공고했고, 원자력안전 관련 분야에 '중대사고시 원자로건물 파손방지를 위한 여과배기계통 개발' 과제가 포함됐다. 주요 골자는 여과배기계통 설비는 물론 핵심부품 및 설비에 대한 성능검증 시스템도 함께 개발하고 이를 통해 성능을 검증하는 것이었다.

에기평은 4월 사업 신청서를 받고 5월 원전 안전 연구 용역 전문업체 M사가 주관하는 컨소시엄을 과제수행업체로 선정했다. 6월엔 협약서를 맺은 뒤 향후 단계별 계획을 담은 사업계획서를 작성했고, 사업계획서 내용대로 4년만에 과제가 완료됐다.

기술개발에 대해선 핵심부품인 여과기기에 대한 성능검증, 종합성능검증, 스위스의 한 연구소에서 진행된 독립성능검증 결과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종합 및 독립 성능검증은 피도형 여과노즐의 크기를 60분 1과 60분의 3으로 줄여 진행됐지만, 기술적 계산으로 실제 크기에서도 작동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결과치를 얻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처음 개발되는 설비인 데다 사실상 실물 검증이 어려웠던 것을 감안하면 연구개발 과제로서 외관상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전체 연구비도 245억 원(정부 지원 183억 원)이었고, 에기평은 이 과제를 '혁신성과'로 평가했다.

■공고 과제 목표 왜 바뀌었나

논란의 핵심은 공고 당시 과제목표다. 당시 공고문에는 '여과배기계통 국산화' 등 7개 지표의 기술개발 목표를 TRL 8단계로 했다. 또 이들 지표의 국내기술 수준은 TRL 2단계, 선진국은 TRL 8단계로 기술했다. 연구개발 최종결과물로 여과배기계통 시제품이 명시되기도 했다.

공고 당시 첨부된 설명 자료에 따르면 TRL 7단계는 성능 검증된 시제품을 실제 환경에서 테스트하고, 8단계는 표준화 및 인허가를 취득해야 한다.

국내 기술 수준인 TRL 2단계에서 4년만에 선진국 수준인 TRL 8단계를 완료해야 하는 과제였던 만큼 상당히 진입장벽이 높았던 셈이다. 이 때문에 과제 응모를 포기한 업체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러나 이후 연구개발 과제는 TRL 8단계에서 요구되는 시제품 검증과 표준화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성능 검증이 가능한 선으로 낮춰 진행돼 완료됐다.

이에 대해 에기평 관계자는 "사업과제요청서(RFP)에서 제시된 'TRL 8'은 이번 프로젝트의 개발 수준을 알려주기 위한 가이드라인일 뿐"이라며 "여과배기계통의 핵심 부품에 대한 검증은 절차는 모두 거쳐 정상적으로 추진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과제공고가 응모가 불가능한 수준의 목표를 요구했다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업계의 입장은 다르다. 공고에 별첨자료까지 첨부된 과제목표인 만큼 TRL 등급은 응모 여부를 결정짓은 핵심 기준이라는 것이다. 통상적으로는 오히려 발주기관이 나서서 공고된 TRL 등급 수준을 맞출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연구개발업체에 종사하는 한 관계자는 "TRL 등급은 최종 목표치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지표 중 하나"라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공고에 명확히 명시하고 별도 설명자료까지 나오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백상·김한수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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