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밀크가 우리말로 보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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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wife를 '와입흐'라고 쓰면 정확한 영어 발음이 된다. 표기법대로 '와이프'라고 쓰면 wipe처럼 들린다. 아내는 평생 걸레질(wipe)이나 하는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fast food도 '홰스틉 후우드'라고 쓰면 영어 발음에 아주 가깝다.'

어느 신문에 실린 '현지 발음 반영 못하는 외래어 표기법'이라는 글이다. 얼핏 보면 그럴듯하지만, 알고 보면 초점이 안 맞는 엉뚱한 주장일 뿐이다. '외래어/외국어'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모르고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을 보자.

*외래어(外來語): 외국에서 들어온 말로 국어처럼 쓰이는 단어. 버스, 컴퓨터, 피아노 따위가 있다.

*외국어(外國語): ①다른 나라의 말. ②외국에서 들어온 말로 아직 국어로 정착되지 않은 단어. 무비, 밀크 따위가 있다.

예를 들어 '밀크/밀크셰이크/우유/소젖'을 보자. 각각 '외국어/외래어/한자어/고유어'에 해당하는데, 이 가운데 '외국어' 밀크를 뺀 나머지 '외래어/한자어/고유어'는 '우리말'인 것. 즉, 외래어 표기법은 외국어 표기법이 아니라 우리말 표기법이다. '와이프'는 아직 표준사전에도 오르지 못했으니 외래어가 아니라 외국어이고…. 이 외국어를 두고 외래어 표기법이 이상하다고 얘기했으니, 아예 초점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복합어인 '더치와이프(Dutch wife·사람 크기의 여성 대용(代用) 인형, 혹은 대나 등(등)으로 만든 긴 베개)'가 표준사전에 올라 있으니 그래도 얘기를 해 보자. 다시 환기하자면, 여기 나온 '더치와이프'는 외래어다. 외래어는 국어로 정착한 말이고, 국어는 한국어를 쓰는 사람끼리 소통하는 언어. 그러니 wife를 '와입흐'라 하거나 '위페'라 하거나 '바이페'라고 하거나 간에 그건 그쪽 언어 사정이고, 한국말을 쓰는 우리는 '와이프'로 쓰고 읽으면 되는 것이다.(도대체, wife를 '와입흐'가 아니라 '와이프'로 쓴다고 해서 '아내'가 아니라 '걸레질'로 알아들을 한국말 사용자가 몇이나 될까.)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다. 굳이 잘 쓰고 있는 '바나나, 라디오, 패스트푸드'를 '버내너, 뤠이디오우, 홰스틉 후우드'로 바꿀 필요도 없고, '비닐 봉투, 아파트, 전자레인지'를 '플라스틱 백, 아파트먼트, 마이크로웨이브 오븐'으로 바꿀 필요도 없다. 너는 원래 귤인데 왜 탱자가 됐느냐고 따지는 일은, 의미 없고 부질없는 일일 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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