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터치] 부산 선용품 마켓, 더는 잊히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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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선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선임연구위원

김용득 회장은 4년 전 새로운 협회를 만들었다. 전국 2000여 개 사업체 중 100개 업체가 회원사로 참여했다. 모든 것이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가는 길은 분명했다. 4년이 지난 2018년 3월 제2기 회장으로 다시 선임됐다. 그동안 협회가 지속해서 성장할 수 있게 사재를 털고, 시장 개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두드러진 업적은 내년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 선용품 총회 유치다. 올해 선용품 박람회를 개최하는 등 업계의 마케팅 활동을 지원하는 계획도 세워 뒀다. 부산에 본부를 둔 한국선용품협회 이야기다.

선용품은 용어 자체가 낯선 말이다. 관세법 제2조에 뜻풀이가 나와 있다. 음료, 식품, 연료, 소모품, 밧줄, 수리용 예비부품, 집기, 그밖에 이와 유사한 물품으로 해당 선박에서만 사용되는 것을 말한다. 배에서 쓰는 기계류 부품이나 선원들이 사용하는 일상 생활용품이라고 하면 간단한데, 오래전부터 써온 한자어 관행 탓이다. 대략 선용품의 종류는 4만~10만 개가량 된다. 일부 전문가는 선박의 기름까지 선용품에 포함시킨다. 선박에 기름을 넣으면서 선용품도 공급받는 시장 상황을 반영한 거다. 이런 선용품 시장은 선박의 입항과 출항에 직접 영향을 받는 구조다. 배가 많이 들어오면, 그만큼 선용품을 구매할 기회가 커지기 때문이다.

수만 개 용품 공급하는 선용품 시장
부산항은 규모에 비해 저조한 실적

해운항만 지탱할 핵심 산업으로 여겨
부산 주력산업으로 키울 대책 세워야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화물을 처리하는 싱가포르가 세계 최대의 선용품 공급 항만으로 등극한 데는 이런 사연이 숨어 있다. 기본적으로 드나드는 선박이 많아 선용품 시장 규모가 크다. 선용품 공급에 필요한 글로벌 네트워크와 고객 맞춤형 특화 서비스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선박에서 필요한 물품을 제때 공급받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얘기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살려 선박 연료유 공급기지로 자리매김한 덕분도 있다. 유럽의 최대 선용품 공급 항만으로 알려진 암스테르담의 성공 방정식도 싱가포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싱가포르와 암스테르담 항만이 400억 달러에 이르는 세계 선용품 시장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부산항도 입출항 선박 수와 컨테이너 물동량 처리 측면에서는 세계 5위권에 들어 있다. 이런 수치만 보면, 부산항의 선용품 마켓도 세계 상위권이어야 맞다. 더욱이 전국 선용품 업체의 68% 이상이 부산에 몰려 있다. 신고된 업체 수는 1200개가 넘는다. 문제는 부산항에서 입출항하는 선박들이 선용품을 사들이는 비율이 싱가포르와 비교할 때 2%대에 불과하고, 규모도 8000억 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칼럼을 쓰면서 부산 선용품 업체 원로 몇 분을 인터뷰했다. 진단은 명료했다. 시장이 변했다는 점과 좁아진 시장을 놓고 소규모 업체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게 첫 번째 문제였다. 취급 품목이 다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품의 브랜드 파워 또한 약하다는 점도 지적됐다. 국제 인증을 받기도 어렵고, 가격도 높아 경쟁력에서 밀린다고 털어놓았다. 중국 항저우에서 선용품을 사다가 파는 업체도 있다고 한다.

해양수산부는 2015년에 세계 최초로 부산 남항동에 선용품 유통센터를 설치하고, 선용품 공동 물류 도매법인을 설립하는 등 여러모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선용품 산업이 항만 서비스 질을 높이는 데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부산이 세계적인 선용품 마켓으로 성장하기에는 갈 길이 멀다. 시급하게는 선용품 시장이 해운항만 서비스를 지탱하는 핵심 산업이라는 전제를 깔고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김용득 회장은 한 칼럼에서 "선용품 산업은 부산항의 경쟁력 강화와 국가 경제를 위해 필요한 새로운 성장 동력"이라면서, 당국의 협조를 요청했다. 부산 선용품 마켓이 부산을 대표하는 주력 산업으로 커나갈 수 있도록 해양수산부와 부산시 등 관계 기관의 관심을 촉구한다. 소중한 전통산업을 다시 일으켜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모두가 공감하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 이름 더 이상 잊히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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