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버리고 싶은 표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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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영화 '베테랑'에서 재벌에 맞서 싸우는 형사 서도철(황정민 분)이 내뱉어 널리 알려진 말이다. 하지만 '가오(かお·顔, 얼굴)'는 일본말. 한때 얼굴마담을 가오마담이라고 부를 정도로 많이 쓰였지만, 이제는 거의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사그라졌는데, 베테랑에서 그만 되살아났다.

"금산분리의 큰 원칙은 재벌이 은행을 사금고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걱정하는 것…그런 부분들을 단도리하면서 가지 않나."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이 얼마 전 경제신문 공동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한데 '단도리(だんどり·段取り)'도 준비, 채비, 단속이라는 뜻의 일본말이다. 청와대 수석 입에서 나온 일본말이라….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일본말과 그 찌꺼기를 배척해야 하는 건 아니다. 어차피 말이라는 게 '머릿수 싸움'이어서 널리 입에 오르내리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 숫자로 밀고 들어와 우리 표준어로 자리 잡은 일본말들을 보자.

'노란 샤쓰 입은 말 없는 그 사나이는 좋지만, 녹색 잠바 입은 파마 머리 그 사나이는 별로야.'

여기 나온 '샤쓰, 잠바, 파마'가 바로 일본말에서 유래한 표준어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을 보자.

*샤쓰(←shirt): =셔츠.

*잠바(←jumper): =점퍼.(잠바를 입다….)

*파마(←permanent): 머리를 전열기나 화학 약품을 이용하여 구불구불하게 하거나 곧게 펴 그런 모양으로 오랫동안 지속되도록 만드는 일. 또는 그렇게 한 머리.

보다시피 이렇게들 표준사전에 똬리를 틀고 앉았다. 특히, 파마는 표준어인 반면 원어인 '퍼머(넌트)'는 되레 비표준어여서, 신경 써야 한다.

'이른바 '나일론 환자'는 보험사기를 대표하는 단어다. 보험금을 타기 위해 환자인척 연기하는 모습은 드라마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종종 목격된다.'

<건강보험료 도둑 '나일론 환자'잡는다>라는 어느 신문 기사 가운데 한 구절이다. 한데 제목과 본문에 나온 '나일론 환자'는 잘못. 표준사전을 보자.

*나이롱환자(←nylon患者): 환자가 아니면서 환자인 척하는 사람을 익살스럽게 이르는 말.(…내가 편안하게 병동에서 나이롱환자처럼 지내고 싶다는 게 아니야.<황석영, 어둠의 자식들>)

나일론을 일본에선 나이롱(ナイロン)이라 한다. '나이롱환자' 역시 일본어 출신 표준어였던 것. 마음 같아서는 표준사전에서 모조리 솎아내고 싶은데….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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