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피란수도 부산] 10. 하워드의 아홉 번째 구름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그 친구… 이번 작전에 기상병으로 따라간다더군"

삽화=류지혜 기자 birdy@busan.com

관상대 옥상에 앉아 달을 올려다보았다. 추석을 앞두고 창포 빛 달무리가 어머니의 구리반지 테처럼 짙었다. 그런 날 뒤에는 비가 온다는 어른들의 말은 종종 맞았다. 어머니는 물론 동네 사람들도 빨래를 잘 하지 않았다. 보수동 자락을 내려다보아도 부쩍 표가 났다. 연합군사령부 기상병인 하워드도 영국에 같은 속담이 있다고 했다.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는 거와 같이 어느 나라든 일기에 대한 공통된 속설이 있다고 했다. 하워드는 작전이 있을 때 관상대에 종종 들렀다. 통역병을 통해서였지만 처음 만났을 때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자신이 존경하는 기상학자와 이름이 같다며 하워드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 손을 잡아당겨 끌어안기까지 했다. 나는 하워드가 붙인 구름 이름을 외우느라 고생했다고 말했다. 그는 구름 중에 적란운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적란운은 국제구름도감에 아홉 번째 구름으로 올라있다. 가장 높이 떠 있어 구름 중에 제일 행복한 구름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주변 구름에 따라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10배 가까운 위력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날 그는 옥상에 앉아 바다를 보며 고향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전쟁을 치르는 나라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고 했다. 바다가 보이는 휴양지가 고향이라서 더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았다.

멀리 영도 쪽에 떠 있는 어선의 불빛이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나는 관측야장을 들고 옥상을 내려왔다. 관측야장은 눈으로 기상을 관측한 것을 시간별로 적은 기록장이었다. 풍향계도 잠잠하고 구름도 달무리 언저리에 평화롭게 걸쳐 있었다. 어제 새벽, 주변국에서 전신으로 보내온 일기도에 약한 태풍 경보가 있었다. 태풍의 위치가 필리핀 근해였는데 그 영향을 알려면 오륙일은 지켜보아야 한다. 한차례 해무가 밀려오긴 했지만 별다른 조짐은 없었다.

관측소에는 강 예보관이 교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주전, 관측과에 근무하던 직원이 군부대 기상요원으로 가버렸다. 다른 사람이 오기 전까지 그 일을 조금씩 분담해야 했다.

나는 관측야장을 강 예보관에게 건넸다.

"아직 조용합니다."

강 예보관이 관측야장을 훑고는 시계를 보았다.

"추석도 얼마 안 남았는데 또 태풍이 오면 큰일인데…."

강 예보관이 걱정 어린 표정을 지으며 야외 관측장으로 갔다. 지난 태풍으로 중부 전선에서 교전 중이던 미군과 연합군 80여 명이 익사했다. 그곳에만 집중 호우가 내렸던 것이다. 하워드는 한국의 지형과 기후를 파악하지 못해 벌어진 참사라고 했다.

교대를 마치고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라고 해봐야 창고에 야전침대 하나 들여놓은 게 다였다. 침대에 앉아 받침대를 무릎에 올리고 갱지를 폈다. 몽당연필을 쥐고 김 예보관이 전날 그린 일기도를 그대로 따라 그렸다. 지방 측후소에서 전보로 수집한 기상데이터를 기본으로 만든 일기도였다. 기상기술양성소에 다니던 중 전쟁이 터졌다. 동료들은 뿔뿔이 흩어지거나 각 지방 측후소에 수습 요원으로 갔다. 어렵게 대신동 관상대에 들어왔지만 부족한 점이 많았다. 내가 뛰어났던 것은 그림 솜씨 하나였다. 강 예보관은 관측은 기본이고 일기도도 능숙하게 그리고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세밀하게 그려도 생략된 등압선이 있기 마련이고 그걸 감안해서 읽어내는 연습을 부단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작업은 생략된 지역의 등고선과 등압선의 존재를 상기하는 훈련이기도 했다. 강 예보관은 태풍이 생기는 것은 하늘의 일이지만 그걸 읽어 피해를 줄이는 것은 관측관이 해야 할 임무라고 했다.

일기도를 다 그린 뒤 나는 하워드가 준 하얀 종이를 꺼냈다. 매끄럽고 뭉게구름처럼 하얗다. 만년필과 같이 받은 지 오 개월이 다 되어 갔다. 나는 종이 위에 주변국과 우리나라의 지도를 그렸다. 그 위에 등압선과 풍향, 풍속을 그리고 빨랫줄처럼 늘어진 전선을 표시했다. 물론 전날의 일기와 내가 관측한 것을 참고한 거였다. 그러고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하워드의 고향을 바다 한쪽에 그려 넣었다. 언젠가 그가 말한 적 있는, 태양에 피부를 그을리는 금발 미녀를 그렸다. 마지막으로 해변에 영국 국기를 꽂아주었다.

밤새 야간 근무를 마친 강 관측관의 얼굴이 수척했다. 관측야장을 받아든 나는 밤사이에 변한 구름의 모양을 살폈다. 풍속, 풍향, 기압 모두 변화를 보였다. 바람은 남동풍으로 바뀌고 있었고 정원 한 편에 있는 벚나무 가지가 동쪽으로 휘어졌다. 하지만 아직 풍속은 5.5m/s였고 파고도 평소보다 높지 않았다.

"그래도 노랑 깃발을 꽂아야겠지요?"

"내 생각도 그러네."

약하다고는 해도 태풍이 소멸할지는 계속 예의주시해야 한다. 세를 불려 진격해 올 경우 영향권에 들기까지 4, 5일. 태풍경보를 내릴지 여부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판단해야 했다.

나는 깃발 통에서 노랑 깃발을 뽑아 깃대에 올렸다. 남항이나 북항에서 조업을 나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어부들이 깃발이 오르기만 기다리고 있을 거였다. 노랑은 주의하라는 신호였다. 대개 조업을 나가겠지만 그래도 조심하라고, 나는 깃발을 더 단단히 동여맸다. 부두 쪽에 정박한 배 한 척에서 깃발이 올라왔다. 출항 표시였다.

예보관이 아침 일찍 그린 일간천기도는 신속하게 등사실로 넘겨졌다. 일간천기도는 그날의 일기도였다. 군부대와 피란민, 그리고 부두에 배포하려면 매번 시간이 촉박했다. 7시 30분. 담당 예보관이 우체국을 통해 전보로 모은 지방측후소 관측자료를 부산방송국과 신문사에 전송했다. 정각 8시가 되자 부평의 무선방송소를 통하여 각 측후소에서 관측한 자료를 방송했다.

등사된 일기도를 들고 나가니 벚나무 아래 열댓 명의 사람들이 모여 기다리고 있었다. 철도국과 군부대, 해운회사, 해관 등에서 보내온 사람들이었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느라 측후소 앞마당은 늘 시끌벅적했다. 지난달, 인민군이 부두에 침투해 모두 사살되었다는 소식도 그들을 통해 먼저 들었다. 그중에 등이 굽은 아이는 근처 피란민들에게 일기도를 나눠주기 위해 온 아이였다. 나는 일기도를 한 묶음 챙겨 그 아이에게 먼저 주었다.

"오늘은 바닷가 근처 가더라도 조심해. 절대 바다에 들어가서도 안 되고. 오후에 바람이 심해질지 모르니 천막 단단히 매고."

나는 아이에게 미리 주의를 주었다. 라디오가 집집마다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일기도를 다 읽을 줄 아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는 그런 말을 매번 귀담아들었다가 피란민들에게 전했는데 지난 홍수 때 그 도움이 컸다. 아이는 일기도를 옆에 끼고 부지런히 관상대를 내려갔다.

"유엔군과 국군이 다시 평양을 공격한다면서요?" 해관에서 심부름을 온 소년이 물었다. 고향이 평양이라고 했는데 반은 기쁘고 반은 슬픈 표정이었다. 전해 듣기는 했지만 나는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작전 수행상 기상 정보는 중요했다. 군부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니 자연히 입조심을 하게 되었다. 부산항에는 며칠 전부터 군함이 이미 들어와 있었다. 소년은 구호물자와 군수물자를 실은 배가 며칠 연이어 입항할 거라고 귀띔했다.

"요즘은 일기예보가 좀 맞는다고… 아버지가 꼭 전해래요."

철도국 심부름을 맡고 있는 녀석이 멀찍이 서서 한마디 하곤 달아났다. 아버지가 부두에서 군수물자와 구호품 등을 내리는 일을 하는데 일기예보 투정이 가장 심했다. 갑자기 비라도 내려 구호 물품이 젖으면 이내 썩거나 무용지물이 되었으니 민감할 수밖에 없을 거였다.

여름 끝 무렵이라 바람은 선선했고 복병산에서 소나무 냄새가 향긋하게 풍겼다. 배 모양처럼 지어진 붉은 벽돌 건물이 근사해 구경 오는 사람이 종종 있었다. 관상대라고 해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낮에는 피란민들이 태풍이 오기 전에 솔잎을 딴다고 줄지어 산에 올랐다. 송편 대신 밀가루 반죽에 돔부콩 몇 알 박아 넣어 솔향기라도 묻히려는 모양이었다. 올 추석에는 어머니에게 다녀오기 힘들 거였다. 가까이 암남동에 있어도 한두 달에 한 번 들를 뿐이었다. 어머니는 동생 둘과 대구에서 피난을 온 이모 집 식구들을 거두고 있었다. 자갈치 난전에서 생선을 팔아 생활하고 있었는데 내가 보내주는 몇 푼 안 되는 월급은 장가 밑천으로 모으는 모양이었다.

하늘에 대한 거대한 꿈이 있어서 기상기술양성소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외가는 대대로 김해에서 농사를 지었고 친가는 송도에서 대대로 배를 탔다. 정월 3일과 8일, 11일과 25일은 용이 모여서 비바람을 만들기 때문에 배를 타는 것을 금했다. 아버지는 그걸 믿었다. 전쟁이 터지고 몇 달이 지난 뒤였다. 아버지는 가덕도 앞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갔다가 갑자기 불어 닥친 돌풍으로 배와 함께 침몰했다. 바람도 그다지 불지 않았고, 금기시한 날도 아닌, 평이한 날씨였다. 뿌려진 일기도를 들고 무조건 대신동 관상대를 찾아간 것은 어쩌면 홧김에서였을지도 몰랐다. 도대체 그런 일이 왜 생기는지 따져 물을 곳이 없었던 것이다.

저녁 무렵 구름은 적운에서 권운으로 바뀌고 있었다. 권운의 특징인 새털구름은 저녁노을과 섞여 넋을 놓을 만큼 자태가 아름다웠다. 하지만 아름다움 끝에 몰려오는 태풍은 더 잔인했다. 날씨가 나빠지기 시작하는 조짐이지만 풍랑이나 풍속을 보면 속단하기는 일렀다.

소장이 비상소집을 한 것은 8시 교대 근무를 앞두고서였다. 태풍이 어느 쪽으로 발달할 것인지 의견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며칠 전 연합군사령부에서 도움을 청해왔던 것이다. 육해공 연합작전이었지만 평양 공격을 위해서는 육로 이동도 중요했다.

이번 태풍은 애매한 상태로 북태평양 근처에 접해 있었다. 열대성 저기압이 고기압에 밀려 소멸되거나 일본열도 동쪽으로 빠지게 되면 한반도는 안정권에 들게 된다. 하지만 고기압 가장자리의 영향을 받게 되면 한반도는 태풍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든다. 강한 태풍으로 발달할 것인지 아니면 소멸할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게 오갔다. 이번처럼 변화 과정이 잘 읽히지 않는 경우는 끝까지 긴장을 해야 한다. 결론은 새벽까지 관측을 해보고 내리기로 했다.

하워드가 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 대령과 함께 관상대로 들어선 것은 일간측간도 배포가 막 끝난 뒤였다. 뒤따라오던 통역관은 긴급사태라고 했다. 그들은 이내 소장실로 들어갔다. 나는 백엽상을 열어 온도와 습도를 관측하고 풍향계를 확인했다. 하늘에는 층고를 달리한 권운과 적운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하워드가 좋아하는 적란운은 바다 쪽에 거대한 구조물처럼 모습을 나타냈다. 기압이나 풍향과 풍속, 구름의 형태 모두 오전 관측 때보다 확연히 발달하고 있었다. 관측을 끝낼 즈음 누군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돌아보니 어느새 하워드가 와 있었다. 통역병이 없었지만 하워드는 짧게 영어로 말을 걸었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클라우드 넘버 나인!"

하워드가 구름을 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그리 반길만한 구름은 아니었지만 감탄사를 내뱉는 하워드에게 웃음을 보였다. 구름을 보고 좋아하는 모습이 꼭 소년처럼 느껴졌다. 나는 하워드를 벚나무 아래 잠시 앉혀놓고 숙소에 모아두었던 일기도와 그림을 챙겨 나왔다. 비록 전쟁으로 아수라가 된 땅이지만 우리나라의 하늘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림을 펼쳐본 하워드는 두 번째로 나를 안았다. 그리고는 무어라 말을 깊게 했는데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자네 섭섭하겠는데."

하워드가 대령과 돌아간 뒤 강 예보관이 내 표정을 살피며 한마디 했다.

"그 친구… 이번 작전에 기상병으로 따라간다더군."

나는 하워드가 몇 번이나 손을 흔들어 주던 것을 떠올렸다. 그제야 뒤를 돌아보니 벚나무만 요란하게 손짓을 했다.

바람과 함께 한여름의 소나기처럼 비가 쏟아졌다. 아침 교대를 마친 나는 삼일 째 붉은 깃발을 깃대에 올렸다. 풍랑 경보였다. 깃발이 아니더라도 며칠 전부터 그들은 이미 몸으로 판단하고 있을 거였다. 바람에 풀리지 않도록 끈을 여러 번 동여맨 뒤 부두 쪽을 쳐다보았다. 출항금지를 알리는 깃발이 올라왔다.

부산항에 들어와 있던 군함이 북쪽으로 이동한 지 사흘째였다. 관상대에서 비상 사이렌을 울렸고 방송에서도 태풍경보 방송을 내보냈다. 전날에 이어 일기도를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다시 주의를 주었다. 천막 조각이나 거적을 둘러쓴 그들은 온몸으로 비바람을 맞고 서 있었다. 나는 등이 굽은 아이에게 어머니 소식을 물었다. 암남동과 송도 자갈치 주변 상인들에게도 이미 피신을 한 상태라고 했다. 이미 서넛 차례 태풍이 지나간 터라 사람들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래도 아이가 비바람을 뚫고 관상대까지 온 것은 내일 날씨에 대한 기대 때문일 거였다.

"일본 열도로 진로를 바꾸기만 한다면…."

관측을 끝내고 돌아온 강 예보관의 말에 직원들도 희망을 보탰다. 강우량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 전조 증세는 누구도 읽을 수 없었다. 하워드는 그건 신의 영역이라고 했다. 나는 기도하듯 하늘을 쳐다보았다. 천둥번개도 치지 않는 하늘이 무서워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내가 자라면서 보아온 구름, 막연히 하늘에 닿아 있다고 생각했던, 그저 순진했던 구름이 다시 몰려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제발 하늘이 도와야 할 텐데."

강 예보관의 절실한 말에 다들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오늘 밤이 고비였다. 나는 관측야장을 받아들었다.

하늘의 일은 참으로 모를 일이었다. 빗줄기가 잦아진 것은 새벽 4시쯤이었다. 부러질 듯 위태롭던 벚나무도 한결 부드럽게 흔들렸다. 나는 관측을 마치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한 덩어리 먹구름 사이로 전날 보이지 않았던 하얀 잔 구름이 듬성듬성 끼어 있었다. 나는 암남동 쪽을 바라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구름, 하워드의 아홉 번째 구름이 천연덕스럽게 남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끝-


김가경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201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작품집 <몰리모를 부는 화요일> 발간. 부산소설문학상 수상.

이번 기획은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아 연재합니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