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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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알게 모르게 말의 힘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말 한마디가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기도 하고, 공동체의 명운을 걸게도 한다. 그렇다고 모두가 말 잘하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는 아니다. '말을 잘하는 것'과 '잘 말하는 것'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말 잘하는 것은 분명 말솜씨가 좋은 것이고, 잘 말하는 것은 그만큼 진솔하게 상대에게 다가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의 '국민성장론' 토론 제안에 대해 "토론도 어느 정도 격이 맞아야 하는 거지~"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 대표는 "국민성장론의 실체가 무엇인지 자세히 못 들어 봤는데 진실성이 좀 있으면 좋겠다"면서 "'출산주도성장', 이렇게 (표현)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 하고는 토론의 가치가 없다"고도 말했다. 애당초 '출산주도성장'이란 이상한 말을 갖다 붙인 정당이 어떤 교훈이라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정작 그들은 허허, 껄껄 하고 웃어넘긴 듯싶다. 그야말로 둘 다 말장난에 그친 셈이다.

말은 사인 간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익명을 표방한 온라인 댓글은 말의 품격을 잃는 경우가 많다.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 영화화 소식이 페미니즘 논쟁으로 번지면서 김지영 역할을 맡은 배우 정유미가 연일 악플러에 시달리고 있다. 영화는 촬영 개시도 하기 전에 평점 1점과 10점을 주는 사람으로 엇갈리고 있다. 글도 별반 다르지 않은 말이고 보면, 해도 해도 너무한다. 급기야 "영화화를 막아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니 누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더욱이 악플 소동이 일 때마다 책 판매는 되레 늘어난다니 이 또한 논리의 역설은 아닐까.

흔한 말로 '말로 천 냥 빚을 갚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혀 아래 도끼 든 줄 모르고 지껄이는' 사람이 있다. 이왕이면 천 냥 빚을 갚는 사람이 되어야지 싶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말이란 게 결국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임을 알면 좋겠다. 어제 오전 평양 순안공항에서 세 번째로 만난 남북 정상 간 포옹을 TV로 지켜보면서 '몸짓언어' 포옹이 가진 힘을 떠올렸다. "당신과 함께합니다"라는 의미가 담긴 포옹 또한 정말 따뜻한 말이구나 싶어 가슴 뭉클했다. 그 포옹이 우리나라의 운명을 바꾸는 기적의 출발점이 되길 기도했다. 김은영 논설위원 key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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