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영화 같은 부산의 근대사
부산은 도시 자체가 영화 주제로 가득한 도시다. 일제강점기 때는 대륙 진출 병참기지였고, 한국전쟁 때는 임시수도였으며 산업화 시대에는 수출입 창구였다. 민주화 시기에는 저항의 본거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러한 부산의 저력은 부산사람들의 부지런한 발걸음으로 만들어졌다. 그들이 걸어온 길을 걷노라면 켜켜이 쌓인 부산의 기운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그래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는 이들에게 그런 길들을 소개한다. 길을 걷다가 만나는 맛집들도 함께 살펴본다.
조선방직 옛터
조선방직 옛터를 한 바퀴를 돌아보는 건 부산의 옛 모습을 더듬는 것과 같다. 옛 부산은행 본점이 조선방직 옛터를 원점 회귀하는 기점이자 종점이다. '조방타운'이란 표지판에서 출발한다. 여기서부터 국제호텔(사진)까지 조선방직 남쪽 담장이 있었다. KT 남부산지사 건물에서 부산시민회관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동천을 따라가는 조선방직 동쪽 경계선은 무지개다리까지다. 무지개다리 약간 못 미쳐 중앙시장으로 가는 골목이 과거 문현선 철로다. 도저히 열차가 다니지 못했을 것 같은 좁은 길이다. 그만큼 당시 철도 차량이 작았다.

문현선 흔적은 조방대로 건너 철물공구상가로 이어진다. 그 근처에 조선방직 정문이 있었다는 자료와 증언이 전해진다. 기점인 옛 부산은행 본점과 '조방타운' 표지판 아래에 도착했다. 옛 조방터를 한 바퀴 완전히 돈 셈이다. 거리는 약 2.5㎞.
내친김에 문현선 흔적을 더 따라간다. 남문시장 끝에서 자성로 지하도로 이어지는 길이 양 갈래로 나 있다. 오른쪽 길로 접어들자마자 눈 위로 '영가대 본 터' 표지판이 보인다. 이제 매축지 마을로 들어선다. 원조할매낙지(051-643-5037), 평양빈대떡(051-646-2381), 한진정식(051-636-5375) 처럼 조선방직 일대에는 맛집이 많다.
우암동 소막마을
부산에 일제강점기 소 막사가 그 형태를 유지한 채 주택으로 이용되는 곳이 있다는 걸 아시는가. 부산 남구 우암동(牛岩洞)이 그렇다. 남부중앙새마을금고 정류장이 출발점이다. 길 너머 새마을금고와 우암2동 우편취급국 건물이 매립 전에 있었던 옛 적기 뱃머리 자리다.
마을을 바라보는 방향에서 오른쪽으로 발길을 내디딘다. 멀리 보이는 동항성당(사진)으로 향한다. 성당 정문을 나와 정문 뒤편 '우암동 도시 숲'으로 방향을 잡는다. 그 길로 올라가면 동항성당 옥상에 있는 예수상이 보인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항구를 내려다보는 예수상과 모습이 비슷하다. 소막마을로 향한다. 출발점이었던 새마을금고 뒤쪽 동네다. 일제강점기 때는 우역검역소와 소 막사들이 있었고, 한국전쟁 때는 소 막사가 피란민들의 수용소로 변했다. 이후 이들은 그곳에 그대로 눌러앉았다. 소 막사가 삶의 터전이 됐다.

장고개를 넘는다. '장을 보러 갈 때 넘는 고개'라는 뜻으로 장고개라는 이름이 붙였다. 남구 문현동 경계 지점인 상경전원아파트 앞이 장고개 마루다. 우암·문현동 맛집으로는 내호냉면(051-646-6195), 칠성식당(051-632-0749), 백년 전통곱창(051-633-6847) 등이 꼽힌다.
전포카페거리 일대

부산의 중심인 서면. 출발점은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범내골역 8번 출구. 지하에서 빠져나와 200m가량 곧장 가면 동천을 건너는 광무교가 지척이다. 오른편에 높게 솟은 건물이 알리안츠생명 사옥이고, 그 뒤편이 부산교통공사다. 알리안츠생명 사옥이 동명목재 옛터였다.

광무교를 건넌다. 더샵센트럴스타아파트를 한 바퀴 돈다. 이 아파트는 2011년에 입주했기에 이곳이 제일제당 자리였던 걸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경남공고 내에는 4·19 혁명 때 희생된 고 강수영 열사 추념 탑이 세워져 있다. 학교를 나와 동천로를 걷는다. 전포천을 복개한 도로다. 쥬디스 태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그 일대에 자리 잡았던 동보극장, 태화극장, 대한극장은 1960~197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다. NC백화점 서면점 지붕 귀퉁이를 따라 걷는다. 백화점 터는 한때 제일모직과 함께 국내 모직업계의 쌍두마차였던 경남모직(한일합섬)이 있던 자리다. 서면중앙시장을 지나면 부산진소방서 구조대가 보인다. 전포카페거리(사진)로 향한다. 멕시코와 이탈리아의 낯선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이억남의 그릴(051-802-2469)'이 이목을 끈다. 소방서 맞은편 울산식육식당(051-816-9292)은 오래전부터 맛집으로 통하는 곳이다.
이준영 선임기자 gap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