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선] 도시재생과 '사회적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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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정 도서출판 호밀밭 대표

이달 초,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일본도시사회학회 연례 학술대회 주제는 도시재생이었다. 나는 거기서 한국 도시재생의 흐름과 몇 가지 사례를 발표했다. 영도 깡깡이마을 사례를 통해 지역정부와 주민을 매개하고 조율하는 전문가 그룹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창원 상남영화제작소 사례를 통해서는 주민들의 자생적 움직임이 갖는 가능성과 과제에 대한 소견을 발표했다. 그 다음 주에는 창원조각비엔날레와 한국큐레이터협회가 함께 주관한 학술대회에 토론자로 참가하기 위해 창원대학교에 다녀왔는데 이곳에서도 도시재생이 핵심 주제로 다뤄지고 있었다. 대체로 도시재생에서 문화예술이 도구화되고 있으며 예술인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통로가 거의 없다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나도 동감했다.

이런 도시재생의 열기는 시대정신의 변화를 반영한다. 요컨대 도시를 대하는 정책 용어가 '개발'에서 '재생'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우리가 도시를 대하던 관점과 태도에도 변화가 필요해졌음을 의미한다. 개발은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이다. 빠르게 대량으로 어떤 목적을 달성해야만 했던 시대적 조건이 이런 방식을 요구했다. 기능 중심적으로 분화되고 파편화된 주체들이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여기에 참여했는데 이런 모델에서는 각자가 서로의 이해관계를 위해 충돌하고 갈등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재생은 그처럼 개별로 존재하던 것들을 다시 서로 '잇는' 데 핵심이 있다. 재생이라고 할 때의 '생(生)'은 비록 한 글자에 불과할지 모르나 우리에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낳을 수 없는 이치처럼, 진정한 의미에서의 생(生)도 오직 '사이(between)'에서만 가능함을 알려준다. 개발이냐, 재생이냐를 가름하는 중요한 질적 차이도 바로 이 지점에서 생긴다.

시대정신 반영 도시재생 열기
이해관계 따른 충돌·갈등 당연

다양한 주체 조율할 전문가 필요
마을은 마을다운 생태계 구축을


이쯤에서 '사회적 편집(social edit)'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금의 도시재생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참여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저마다의 전문성을 가지고 이상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모델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그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매개하고 조율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출판업을 하는 나로서는 이 전문가를 편집자의 개념으로 환치해 이해한다. 출판에서는, 저자의 의도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조력자이면서도 동시에 저자인 당사자가 놓치기 십상인 객관적 거리를 확보해 최종 결과물의 질을 높이고 그 책임을 지는 편집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편집을 '출판의 꽃'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시재생에도 여러 이해관계자가 신뢰할 수 있는 유능한 편집자가 필요하다. 관료나 학자 혹은 주민이나 향유자 한쪽의 주도로만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사람은 사람'들' 속에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인 것처럼, 마을도 마을'들' 속에 있을 때라야 마을이다. 마을'들' 속 그 그물망 어딘가에 제자리를 잡을 때 우리는 그것을 비로소 생태계라고도 부른다. 마을'들' 속에 있던 마을을 똑 떼어내 따로 가꾸고 치장하면 오히려 그 마을은 고립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마침내 동물원이 되고 관광지가 되고 감옥이 된다. 재생되는 게 아니라 거꾸로 고사한다.

나고야 학회에서 발표를 끝냈을 때, 기타큐슈시립대 류영진 교수가 내게 들려준 한 에피소드가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수십 가구밖에 안 남은 야마구치의 한 어촌 지역에서 도시재생사업이 시작됐을 때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간담회를 하는데 그곳에서 오래 살아온 한 어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꼭 재생해야 합니까? 왜 그렇게 열심히 재생하려고 합니까? 수술대 위에서 죽어 가는 데다 인공호흡을 해야 합니까? 그냥 사라져가는 걸 잘 기록해 주면 안 되나요?"

함께하는 이들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을 때 나올 수 있는, 외로움과 체념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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