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한·일어업협정의 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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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평택대 국제물류학과 교수

2001년 어느 날 미국 워싱턴주립대학에서 해양법을 가르치던 허쉬만 교수님과 나눈 대화는 살짝 충격이었다. 한·일 해양경계 획정이라는 주제로 공동 과제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중 일본인 학생이 한·일어업협정 해도를 펼쳐 들고, "독도가 공동관리수역에 포함되어 있다"면서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놓고 한국과 일본 간에 분쟁이 있다"고 말했다. 이를 들은 허쉬만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한국인 학생이 "이 협정은 해양생물자원에 대해서만 적용된다"고 부연 설명을 하자 똑같은 각도로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한·일어업협정은 말 그대로 어업에 관한 협정이다. 영토에 대한 협정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우리 측 용어로는 '중간수역', 일본 측 용어로는 '잠정조치수역'에 독도가 포함된 것이 미국인 교수에게는 '영토분쟁'으로도 충분히 해석되었을 법하다. 한·일어업협정은 산업(어업)과 영토(독도)의 변수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 '고차 방정식'이라는 점이 객관적으로도 확인된 셈이다.

협상 난항 3년째 입어 중단
부산지역 수산업 줄도산 우려
일, 영토 문제 제기 속셈 엿봬

협정 파기 극단적 선택 피해
어선 세력·어장 조정 서둘러
수산업 구조개혁 본격화해야


한·일어업협정은 한·일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1965년 6월에 최초로 체결됐다. 대체로 공해상의 선박은 그 선박의 소속국만이 관할권을 가진다는 '기국주의'를 표방해 당시에는 어선세력이 강한 일본에 유리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EEZ) 개념이 등장하면서 '연안국주의' 논리가 강해지더니, 결국 일본은 1996년 협정을 일방적으로 종료했다. 이후 양국은 우여곡절을 거쳐 지금의 한·일어업협정이 1999년 1월 22일 정식 발효하였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

한·일어업협정이 최근 다시 이슈가 되고 있다. 한·일 양국은 매년 어업협정을 체결하고 상대국 배타적경제수역(EEZ)에 입어하였으나, 2016년 6월을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3년째 상호 입어가 중단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대한 빨리 타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반면 "이참에 한·일어업협정을 파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 '산업'과 '영토'의 논리가 동시에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국내 최대의 수산업 허브 도시인 부산에서는 어업인은 물론 시민단체가 나서 한·일어업협정의 조속한 타결을 촉구하는 총궐기대회가 열리는가 하면 해상시위까지 벌어지고 있다. 한·일어업협정의 협상 표류로 조업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수산업이 위기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한진해운 사태로 부산지역 해운항만 산업이 치명적 타격을 입은 데 이어 이번에는 수산업계의 줄도산 우려가 커져 가고 있다.

한·일어업협정 협상이 이토록 난항을 겪고 있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먼저 어업 측면에서 일본은 결코 답답할 것이 없다. 우리 어선의 일본 EEZ에 대한 의존도가 훨씬 높기 때문이다. 또한 무역 측면에서도 일본은 경제적 계산을 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 정부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발생 후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 인근 해역의 수산물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를 내린 것에 대한 대응 차원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와 함께 동해에서 영토적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 하는 일본의 속셈도 엿볼 수 있다. 이미 중간수역 등으로 국제사회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확보했다고 판단한 일본으로서는 동해에 대한 자국의 입지를 계속 강화하겠다는 전략도 숨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협상 조기타결에 대한 조급함과 협정 파기라는 '판도라 상자'를 여는 극단을 모두 피해야 한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 이낙연 국무총리,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까지 나선 전방위적 범정부 대응은 과거 1998년 신한·일어업협정 협상 당시와 비교하면 매우 고무적이다. 당시 협상은 쌍끌이 파동, 해수부 장관의 구걸 외교 논란, 수산직 고위공무원 대거 형사처벌, 해수부 조직의 역량 부족이 드러나는 등 많은 후유증을 남긴 바 있다.

또한 우리 수산업에 대한 대대적인 공급구조 개혁을 본격화해야 한다. '등량등척(等量等隻)'원칙에 따라 일본 어장에서의 조업을 계속 줄여야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결국 어선 세력과 어장 조정은 필수적인 일이다.

그러나 장기적이고 근본적으로는 언젠가 해양경계를 획정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국주의 시대에서 연안국주의 시대로 바뀐 데 이어 이제는 산업의 논리보다 영토의 논리가 동해에서 더욱 강력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산업과 영토의 고차방정식을 잘 처리하는 우리 모두의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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