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봉정사] 700년 단청의 美, 봉황이 머물다 간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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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 만세루 입구. 만세루 대청 밑으로 난 입구를 통해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 앞마당이 나타나 극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저 멀리 대웅전이 보인다.

아침나절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가을 기색이 완연하다. 여름내 쌓인 마음의 때를 벗고 바쁜 일상의 여유도 가질 겸 해서 경북의 산사(山寺)로 발걸음을 향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 있고 올해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등재된 아름다운 사찰, 봉정사(鳳停寺)는 천등산(天燈山) 남쪽 자락에 소슬하게 서 있다.

672년 신라 때 창건된 고찰
대웅전은 고풍스러움과 화려함
극락전은 국내 最古 목조건물

고즈넉한 산사에서 만난
'건축 교과서'의 멋과 아름다움

■봉황이 머문 사찰

매표소를 지나 200m쯤 된비알 포장길을 걸어가면 단청이 바랜 일주문이 나오고 여기서 다시 200m쯤 더 올라가면 본당에 도달한다. 오르막길이 이어지지만 청아한 계곡 물소리가 발목을 적시고 길 양옆으로 숲이 우거져 전혀 힘든 줄 모르겠다.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년)에 의상대사 제자인 능인 스님께서 창건한 사찰이다. 천등산은 원래 대망산이라 불렸는데 능인대사가 젊었을 때 대망산 바위굴에서 도를 닦던 중 스님 도력에 감복한 천상의 선녀가 하늘에서 등불을 내려 굴 안을 환하게 밝혀 줘서 천등산이라 개명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그 뒤 수행정진을 계속하던 능인 스님이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접어 날리니 이곳에 와서 머물러 산문을 개산하고, 봉황이 머물렀다 해 봉황새 봉(鳳)자에 머무를 정(停)자를 따서 봉정사라 명명했다.

그 뒤 6차례에 걸쳐 중수했다. 극락전(국보 제15호), 대웅전(국보 제311호), 후불벽화(보물 제1614호) 목조관세음보살좌상(보물 제1620호), 화엄강당(보물 제448호), 고금당(보물 제449호), 덕휘루, 무량해회, 삼성각과 삼층석탑 등이 있으며 영산암과 지조암을 부속 암자로 거느리고 있다.

고려 태조와 공민왕이 다녀가기도 했으며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방한 때 들르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휴가 첫날 봉정사를 찾아 관람했다.

아름다운 봉정사 극락전의 천장.
■국내 최고의 목조건물

만세루를 조심스럽게 지난다. 만세루는 사찰 입구에 해당하는 건축물인데, 지형의 경사를 자연스럽게 이용해 앞면은 2층이지만 뒷면은 단층으로 처리했다.

만세루와 대웅전은 극적으로 만난다. 대청마루 밑 낮은 천장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인 채 돌계단 10여 개를 밟고 오르면 갑자기 앞마당이 환하게 열리고 그 뒤에 대웅전이 당당한 모습으로 참배객을 맞는다. 고개를 숙이고 오르도록 설계한 것은 부처님 앞으로 나아갈 때 최대한 마음가짐을 경건하게 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대웅전을 보기 전에 우선 극락전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극락전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최고(最古) 목조건물로 유명하다. 과거에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이 최고 건물로 알려져 있었으나 수리 중 상량문에서 1363년에 수리했다는 기록이 나옴에 따라 봉정사 극락전이 최소 13년 빨리 건축됐다는 게 정설로 굳어졌다.

봉정사 극락전은 대웅전과 더불어 빼어난 건축학적 아름다움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고려, 고려 말, 조선 등 시대별 건축의 변화상을 잘 보여줘 건축 교과서로 통한다.

극락전은 흔히 고구려식 건축이라고 한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기둥과 공포(拱包) 그림이 나오는데 극락전은 그것과 합치되는 결구 방식을 보여준다. 기둥과 기둥 사이 옆으로 가로지른 창방을 받치고 있는 나무받침 역시 고구려 벽화에서 보이는 복화반(覆花盤), 즉 꽃잎을 엎어놓은 모양을 하고 있다. 사찰에 복화반이 설치된 건 거의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극락전은 특히 공포를 기둥 위에만 배열한 '주심포' 방식이다. 주심포 방식은 필연적으로 배흘림기둥을 낳았다. 건물 내외부에 곱게 다듬은 기둥들이 모두 유려한 곡선의 배흘림을 하고 있어 가없는 멋을 보여준다.
봉정사 대웅전 천장 우화 그림.
■가람배치의 아름다움

극락전과 나란히 서 있는 대웅전으로 간다. 대웅전은 극락전과 여러모로 대비되는 건축미를 보여준다. 극락전은 맞배지붕인데 대웅전은 팔작지붕이고, 극락전이 주심포 방식인데 대웅전은 다포 방식이다. 대웅전은 700년 된 단청의 고풍미가 물씬한 건물인데, 천장 닫집에 다섯 발가락의 용 그림이 그려져 있다. 더욱이 천장은 온통 우화(雨華) 그림으로 장식돼 있어 고풍스러운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봉정사의 아름다움으로 건물들을 유기적으로 포치한 가람배치에서 찾는다.

예컨대, 봉정사 대웅전 앞마당은 전형적인 산지중정형(山地中庭形)으로 남북으로는 대웅전과 만세루, 동서로는 선방인 화엄강당과 승방인 무량해회가 포치하고 있다. 그런데 이 앞마당에는 석탑이나 석등 같은 일체의 장식물이 없다. 단순성과 표정의 절제로 말간 느낌의 절 마당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바로 곁에 있는 극락전 앞마당은 중정에 귀여운 삼층석탑이 자리 잡고 극락전 돌계단 양옆으로 화단이 있어 정겨운 공간이 연출된다. 그 앞으로는 거칠 것 없이 시원한 전망이 열려 있어 대웅전 앞마당 같은 엄숙과 위압이 없다. 두 대비적인 공간의 병존이 우리나라 산사의 대표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천동 석불.
■다양한 얼굴의 영산암

봉정사 답사에서 요사체 뒤쪽 산자락에 자리 잡은 영산암(靈山庵)을 빼먹으면 밥 먹고 숭늉 안 마신 격이다. 그만큼 매력적인 암자라는 뜻이다. 영산암은 낡디 낡은 누마루인 우화루 밑으로 대문이 나 있고 머리를 숙인 채 경내로 들어서면 승방 서너 채가 분방하게 배치돼 있다. 통로마당, 스님마당, 부처님마당 등 3단계 마당이 위계적으로 들어서 있다.

첫눈에 일반 가정집 정원에 들어섰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방금 본 극락전과 영산전 앞마당이 긴장감으로 팽팽하다면 영산암 마당은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풀어진 듯하면서도 조는 긴장감이 있고 밝은 듯하면서도 어둡고, 정연한 듯하면서도 분방하다.

이 마당의 압권은 큰 바위에 뿌리박은 350년생 소나무. 뿌리 힘이 얼마나 강했으면 바위에 틈이 벌어졌을까. 해의 방향에 따라 소나무의 깊은 그림자가 옮겨 다님으로써 절집의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음을 알겠다.

한편 봉정사에서 돌아오는 길에 '안동 이천동 석불'(보물 제115호)도 볼 것을 권한다. 우리나라 3대 마애불로 불리는 석불은 '제비원 석불'로도 불리는데 조선 시대 제비원이라는 역원(여관)이 있던 자리여서 그렇게 불린다.

멀리서 보면 큰 바위에 몸체를 표현하고 그 위에 얼굴을 조각해 얹어 놓은 것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큰 바위 두 개 사이에 기도 공간을 만들어 착시효과를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무가 중 성주님께 치성드리는 성줏굿 노래가 있는데, 전국 어느 지역 성주풀이든 성주의 본향을 따지는 대목에선 제비원 석불을 지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글·사진=윤현주 선임기자 hoho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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