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리 낙동강의 눈물] 1. 윗물의 살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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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휘감고 아래로 흐르는 젖줄 윗물부터 썩고 있다

황지연못에서 멀지 않은 경북 봉화군 석포면 석포리 굽이치는 협곡을 따라 반세기 전부터 자리 잡은 영풍제련소가 희뿌연 연기를 내뿜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경상도와 강원도의 경계, 황지천과 철암천이 만나 낙동강 본류가 시작되는 곳. 경북 봉화군 두메산골에 겨울이면 유독 눈이 자주 내리는 마을이 있다. 주민들은 이 눈을 '영풍눈'이라 부른다. ㈜영풍석포제련소에서 내뿜는 수증기가 그대로 눈이 되어 떨어져 붙은 이름이다.

◆낙동강 오염의 시작 영풍석포제련소

경북 봉화군 석포면 두메산골 위치
오염물질 쌓여 붉게 물든 자갈밭
공장 주변 소나무 숲은 민둥산으로
반경 3㎞ 토양에선 중금속 초과 검출

올 4월 경북도, 조업정지 처분 불구
행정소송 제기 등 '버티기 모드' 대응

1300리 낙동강의 발원지인 강원도 태백시 황지연못.
■석포리 '죽음의 협곡'

땅거미가 서서히 걷히는 이른 새벽. 영동선 기찻길 옆 도로를 따라 봉화군 석포면으로 들어서자 산 너머로 하늘을 뒤덮은 하얀 연기가 보였다. 석포역으로 들어서자 연기의 정체가 나타났다. S자로 굽이치는 낙동강 협곡을 비집고 자리한 영풍제련소. 제1공장이 무럭무럭 내뿜는 흰 연기 아래엔 거대한 알림판이 서 있었다. '수증기 발생 지역.'

주민들은 이 일곱 글자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주변 나무와 강이 그 이유를 설명했다. 1공장과 2공장을 둘러싼 소나무 숲 곳곳이 붉게 타들어가 민둥산으로 변해 있었다. 잎은 물론 가지와 줄기도 말라비틀어졌고, 토양은 풀 한 포기 없이 메마른 민낯을 훤히 드러냈다.

공장 바로 옆 낙동강 물속도 마찬가지. 각종 오염물질이 쌓여 붉게 물든 자갈밭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영풍제련소 환경오염·주민건강 피해 공동대책위 신기선 공동대표는 "제련소에서 매일 쓰는 1만 1000t 물 중 80% 이상이 수증기 형태로 증발하는데, 그 속에 섞인 아황산가스가 비만 오면 함께 씻겨 내려 주변 식생을 초토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5년간 영풍제련소가 받은 행정처분은 43건. 이 중 25건이 대기오염 관련이다.

아는 사람만 아는, 석포리의 비극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14년. 영풍제련소가 세 번째 공장을 짓겠다고 나서면서부터다. 인근 주민과 환경단체는 반발했고 부산·경남·대구·경북 등 낙동강을 낀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공동대책위가 꾸려졌다.

끊임없는 문제 제기에 환경부는 2015년 공장 가동 반세기 만에 사실상 첫 환경 영향조사를 벌였고, 이듬해 영풍제련소 주변 환경 피해가 비로소 수치로 명확하게 드러났다. 한국환경공단이 제련소 반경 3㎞ 내 토양을 조사한 결과 고농도 중금속 오염이 확인됐다. 비소(8곳), 카드뮴(2곳), 아연(13곳), 불소(9곳) 등 산림 훼손 지역 25개 지점 중 대부분 지역에서 중금속 수치가 환경기준을 초과했다. 특히 불소의 경우 ㎏당 194.0~640.0㎎이 나와 2012년 구미 불산 가스 누출 사고 때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식물 피해는 더 심각했다. 훼손 지역 식물의 불소화합물 농도는 ㎏당 평균 166.0㎎(최대 545.0㎎)으로 일반적인 자연 상태의 식물(2~20㎎)보다 최대 270배나 많았다. 아연 농도(2075.0㎎) 역시 2~3㎞ 떨어진 식물(696.0㎎)에 비해 3배나 높았다.
■2.2㎞ '영풍 무법지대'

낙동강 최상류 2.2㎞ 물길을 따라 들어선 영풍제련소 1·2·3공장. '윗물의 절규'는 현재진행형이다. 1공장 뒷산 너머 성황골 한 토박이 주민은 "3년 전 세 번째 공장이 생긴 뒤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눈이 따갑고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다"며 "환경단체에서 떠드니깐 요즘에는 조금 나아졌다"고 말했다.

올 4월 석포리 강과 나무들이 반길 만한 소식이 들려왔다. 경북도가 영풍제련소에 조업정지(20일) 처분을 내린 것이다. 앞서 2월 24일 제련소 침전조 펌프가 고장 나면서 불소(기준치 10배)와 셀레늄(2배) 등 중금속 폐수 50~70t이 낙동강으로 흘러들었다. 이틀 뒤에는 배관을 씻어낸 폐수 0.5t을 토양에 그대로 배출하다 합동 점검을 나온 당국에 적발됐다.

48년간 수많은 위법 행위로 과징금 등 행정처분을 받았지만, 조업정지가 내려진 건 이번이 처음. 영풍 측은 '과잉처분'이라며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영풍제련소 공대위 정수근 공동집행위원장은 "행정심판에서 지더라도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최대한 조업정지를 미루려는 꼼수"라고 비판했다.

영풍제련소는 행정심판을 앞두고 7월 말 언론인을 초청해 처음으로 내부를 공개했다. 이 자리에서 내년 말까지 '폐수 무방류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정작 슬러지 처리 설비 등 민감한 시설은 공개하지 않아 '여론 물타기'란 비판이 일었다. 더욱이 언론 공개 당일 제2공장에서는 중금속에 오염된 침출수가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현장이 포착되기도 했다. 조사 결과 하천수와 집수 관정에서 망간, 바륨, 아연, 철 등이 다량 검출됐다.

지난달 10일엔 경북도 보건환경연구원에서 석포역 정광보관장 주변 토양을 조사해 환경기준보다 40배 많은 아연(2만 4110.8㎎/㎏), 13배 많은 카드뮴(132.56㎎), 9.7배 많은 납(3874.5㎎/㎏) 등이 나오기도 했다.

환경부와 경북도, 봉화군 등 행정관청은 뒤늦게 몇 년 전부터 영풍제련소 오염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제련소 측은 버티기 모드다. 봉화군청은 2015년부터 제련소 공장 내 광범위한 토양 중금속 오염을 확인하고 정화 명령을 내렸지만, 영풍 측은 '기술적·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행정소송으로 맞서고 있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 중 하나로 꼽히는 경북 봉화 백천계곡. 천연기념물(제74호)인 열목어의 최남단 서식지로 유명하다. 기암절벽이 빼어난 자태를 뽐내고 계곡물엔 사람이 출입할 수 없는 청정지역. 이 계곡 바로 아랫마을은 1990년대 후반까지 낙동강 최상류를 대표하는 공해 유발지였다. 영풍제련소보다 10년 일찍, 멀게는 일제강점기부터 아연광산이 성업했다.

◆폐광산 찌꺼기 안동호까지

연화산 남쪽 위치 옛 연화광산
폐갱도 오염물질·광석 찌꺼기
지하수 섞여 낙동강으로 흘러
"40년이 지난 지금도 악취 난다"

상류 오염물질 모여드는 안동호
물고기·철새 떼죽음 '연례행사'
옛 연화광업소가 폐광미를 대거 매립한 '층골' 아래에서 침출수가 새어 나오고 있다. 정종회 기자
■골짜기에 묻힌 광석 찌꺼기


봉화 열목어마을 캠프장(옛 석포초등 대현분교)을 지나 작은 다리를 건너자 왼쪽으로 스산한 분위기의 3~4층짜리 빈 건물 몇 동이 눈에 들어온다. 옆면에 '연화사원주택'이란 글씨가 선명하다. 500여m 떨어진 월암마을에도 빈 아파트 3동이 송정리 천을 따라 줄지어 섰다. 1998년 폐광한 연화광산 광부들이 살던 주택이다. 연화교회, 연화식당…. 연화광산이 문을 닫은 지 20년이 지났지만, 마을 곳곳에는 '연화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 중엔 뭇 생명을 위협하는 '화약고'도 도사리고 있다.

지난 4일 낮. 연화산 남쪽 산자락 대현리 층골의 수풀을 헤집고 들어가자 옛 연화광산의 '중앙갱'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해발 640m, 갱도 기준으로는 0m 지점이다. 폐갱도 안에서는 서늘한 바람과 함께 쉴 새 없이 갱내 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물줄기는 얼마 못 가 또 다른 폐갱도(대절갱)의 침출수와 만났다.

폐갱도의 오염물질과 지하수가 뒤섞인 탁한 물은 다시 더 거대한 오염물질을 맞닥뜨린다. 바로 층골 땅 밑에 매립된 막대한 양의 '폐광미(광석 찌꺼기)'다. 원래 깊은 'V자' 골짜기였던 층골이 지금은 평지가 된 이유다.

층골이란 이름은 1930년대 미쓰비시 광산 시절, 바위를 깎아 층층이 길을 낸 데서 유래했다. 광복 이후 1961년 영풍광업주식회사가 채광권을 얻어 연화광업소란 이름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아연이 3~4% 함유된 원석을 캐어내, 선광 과정을 거쳐 정광(아연 40~50%)은 일본 제련소로 수출하고, 남은 폐광미는 그대로 낙동강으로 흘려보냈다. 1970년 직접 아연괴를 생산하는 영풍석포제련소를 차리면서 강물 대신 층골에 폐광미가 쌓였다.

층골 폐광미 매립지 아래 구멍에서는 지금도 정체 모를 침출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풍제련소 공대위 이상식 공동대표는 "어린 시절 등하굣길에 선광장을 가로지르면서 맡던 것과 똑같은 냄새가 40년이 지난 지금도 난다"며 "당시엔 침출수를 막는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 폐광미가 섞인 물이 낙동강으로 흘러들었다"고 말했다.

연화광업소는 1970년대 중반 층골이 폐광미로 가득 메워지자, 연화산을 가로지르는 굴을 뚫어 행정구역 넘어 태백시 동점동(고식골)로 폐광미를 내다 버렸다. 연화광산이 폐광할 때까지 20여 년간 광석 찌꺼기 수십만t이 매립된 고식골. 그 위에 현재 태백레이싱파크가 들어서 있다.
안동호 강가에 물고기와 새들이 폐사한 현장. 낙동강사랑환경보존회 제공
■호수 바닥서 스며 나오는 찌꺼기

12억t의 담수량을 지닌 경북 '안동호'. 거대한 수량만큼이나 연화광산과 영풍제련소 등 낙동강 최상류에서 배출한 수많은 오염물질이 이 호수로 모여든다. 호숫가에 퇴적된 각종 찌꺼기는 가물 때면 지표면으로 스며 나와 다시 강물로 흘러든다. 물고기 떼죽음은 연례행사가 된 지 오래. 특히 지난해 여름엔 안동호 상류에서 매일 수백에서 수천 마리씩 허연 배를 드러낸 물고기가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철새들 역시 오염된 물고기를 먹고, 영문도 모른 채 쓰러지고 있다. 올해는 2월 26일부터 왜가리가 안동호를 찾아와 4월 20일부터 죽어 나갔다. 4월 초 날아온 쇠백로는 6월부터 비틀대다 결국 다시는 날갯짓을 하지 못했다.

낙동강사랑환경보존회 이태규 회장은 매일같이 안동호 주변을 돌며 물고기와 새들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여름까지 이 회장이 수거한 철새 사체만 500마리가 넘는다.

2016년 6월 일본 도쿄농공대 와타나베 이즈미 교수가 안동호 주변 퇴적물과 폐사한 물고기를 조사한 결과 카드뮴, 셀렌, 망간 등 중금속이 고농도로 관측됐다. 해당 내용이 국감에서 지적돼, 환경부가 진행한 수생태계 조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갈겨니와 쉬리의 카드뮴 농도는 ㎏당 1.24㎎, 1.37㎎으로 수산물 중금속 기준(0.1㎎)의 12~13배에 달했다. 금강에 사는 물고기보다 셀레늄과 구리, 아연 등 대부분 항목이 수십 배 높게 검출되는 등 유독 안동호 물고기들이 중금속에 심각하게 오염된 것으로 드러났다.

안동호 상류 중금속 오염 문제가 지속해서 제기되자 환경부는 올 들어 영풍제련소 주변을 포함해 낙동강 상류 지역의 환경 영향조사를 전면 재실시하기로 했다. 3월 초 주민과 환경단체, 관계 부처와 기업, 학계가 참여하는 '안동댐 상류 환경관리협의회'를 꾸려 토양·산림·수생태·수질·대기·주민건강 등 분야별로 광범위한 환경 영향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민간단체 대표로 협의회에 참여한 이태규 회장은 "안동댐 하류 40㎞ 지점까지 물고기와 조개가 다 사라져 버렸다"며 "안동 주민들은 호숫물을 상수원으로 안 쓰기 때문에 상관없지만, 문제는 낙동강 하류 주민들"이라며 부산 시민의 건강을 걱정했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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