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순 학교법인 동서학원 이사장 "이웃 사랑 건학 정신, 후손들 알아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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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학을 마치고 남편인 고 장성만 박사와 함께 귀국했던 1964년, 우리 부부가 가진 돈은 단돈 75달러뿐이었죠. 남편은 대교동 적산가옥을 팔아 온천장에 조그마한 전세집을 얻고, 남은 돈으로 부산 전역을 돌아다니며 학교 부지로 쓸 땅을 물색했어요. 당시 부산시에 편입되지 않은 '동래군 사상면 주례리 냉정마을' 골짜기의 버려진 땅을 찾았어요."

박동순 학교법인 동서학원 이사장은 오래전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렸다. "산비탈의 척박한 땅이었지만, 그 땅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희망에 사로잡혔어요. 다행히 미국 유학 때 펼친 학교 설립 모금운동으로 탄생한 'Korea Church of Christ mission' 후원회(훗날 재미재단 이사회로 정식 발족)가 버팀목 역할을 했습니다. 힘든 시기였지만, 미래를 바라보며 고난과 역경조차 즐겁게 받아들였죠."

팔순 기념 회고 '내 잔이…' 출간
53년 전 설립 과정·신앙심 소개
남편은 같은 꿈·목적 가진 동지


박 이사장은 최근 팔순 기념 회고록 <내 잔이 넘치나이다>를 펴냈다. 회고록은 열아홉 명의 신입생으로 출발한 대학이 현재 10만 명이 넘는 졸업생과 2만 명이 넘는 재학생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꿈과 비전, 희망과 좌절을 담고 있다. 박 이사장은 자신의 소박한 개인사를 맛깔스럽게 소개하면서 강한 신앙심으로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온 일대기를 그렸다.

박 이사장은 남편인 장성만 박사와 1965년 2월 경남정보대학의 시작이자 학교법인 동서학원의 출발이었던 영남기독교실업학교를 세웠다. 기술과 신앙을 가진 인재를 키우겠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회고록을 펴낸 취지를 전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대학, 이것은 동서학원의 변치 않는 건학정신이며, 영원토록 이어가야 할 뿌리입니다. 설립자가 어떤 정신으로 학교를 세웠고 53년간 동서학원이 발전해온 역사를 동서가족과 후손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박 이사장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준 사람을 언급했다. "예수를 믿게 해준 어머니는 희생과 사랑이 그리스도 정신이라고 하셨죠. 이화여대 재학 때 김활란 박사가 '각자 받은 달란트대로 최선을 다하라'고 하셨던 말씀이 제 인생의 푯대가 됐죠. 힘든 미국 유학 때 친절하게 도와준 기독교 잡지 <호라이즌>의 편집장 맥팔란드 부부는 베풀며 살아가는 미덕을 가르쳐줬습니다."

박 이사장에게 인생의 전환점을 물었다. 순간 그는 경남정보대 민석기념관 이사장 집무실 옆 접견실에 걸린 고 장성만 박사의 존영을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고상하고 우아한 독신 여교수가 됐을 겁니다. 신학을 전공했지만 생활인으로서의 신앙을 몸소 실천한 남편을 지켜보면서 그분의 삶에 큰 감동을 받았어요."

회고록에는 장성만 박사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남편은 평생 살면서 같은 꿈과 목적을 가진 동지였습니다. 나를 지극히 사랑한 친한 친구였고 가장 큰 위로와 힘이 돼 준 분입니다."

회고록에는 장제국 동서대 총장, 장주영 동서대 디자인대학 교수, 장제원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등 3명의 자녀에 대한 애정을 담은 대목도 있어 눈길을 끈다.

53년간 교육사업에 매진한 감회를 묻자 박 이사장은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전도서 11:1)를 인용했다. "제가 동서학원과 도와주신 분들을 위해 할 일이란 이 생명 다할 때까지 빚진 마음으로 강물 위에 내 식물을 던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잔에 차고도 넘치도록 흐르는 은혜에 그저 감사드립니다."

1939년 통영에서 출생한 박 이사장은 부산여고,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신시내티 신학대학원을 수료했다. 1999년 동서대 총장에 취임해 12년간 역임했다. 부산YWCA 이사, 국제존타클럽 한국연합회 회장 등을 맡아 여성 지위 향상에 기여했으며 환경단체 부산그린어머니운동본부(BMGM)도 설립했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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