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조해 나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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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나는 말과 글의 전문가라 하기에는 부적절하지만 나름대로 문자정책에 대한 관심은 많았다.…새로운 외국 이론의 표기에는 외국어의 사용이 불가피했고, 한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문자는 한자어를 사용해야 쉽게 전달되는 경험을 갖기도 했다. 간단한 경제(經濟), 경영(經營)이라는 말도 한글로만 표기해서는 그 뜻을 바로 전달하기가 어렵다.'

정운찬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어느 신문에 쓴 칼럼 구절인데, 이게 무슨 말인가 싶다. 경제, 경영을 한글로만 표기해서는 뜻을 바로 전달하기가 어렵다니, 이거 농담일까. 아차, '농담(弄談)'이라고 써야 더 알아보기 쉬우려나.

'경제, 경영'이라는 우리말조차 모르는 사람에게 한자까지 가르치자는 얘기, 이게 앞뒤가 맞는 말일까.(그러면, 한자를 쓰지 않는 언어권에서는 대체 '경제, 경영'을 어떤 방법으로 가르칠까.) 한글로 '경제, 경영'만이라고 써서 뜻이 전달되지 않는다면, 그건 한자 병기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국어 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쓸 수 있는 어휘가 다양하지 않다거나 언중들 문해력이 떨어지는 책임을 한자에 지우는 건 올바른 진단이 아닐뿐더러 한자에게도 가혹한 일이다.

저렇게 한자에 과도한 짐을 지우니 일어나지 않아도 될 잘못이 벌어지는 것. 이를테면 예전 국회에서는, 한자 세대인 정치인들조차 한해(旱害)를 조해(早害), 이재민(罹災民)을 나재민(羅災民), 유비무환(有備無患)을 유비무충(有備無忠), 환관(宦官)을 관관(官官)이라고 말해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한자를 정확하게 알지 못해서 벌어진 실수이지만, 한자를 쓰지 않았다면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실수들이기도 하다. 한데, 저게 예전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 더 문제랄까.

'이제까지 구두탄에 지나지 않았던 '재벌 총수 일가의 투명한 기업경영'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새 정부 출범 후,…한진그룹의 변화는 우리사회가 이제 비로소 대전환의 시대를 맞고 있음을 실감케 하고 있다.'

어느 신문 기사인데, '구두탄'이라는 우리말은 없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을 보자.

*구두선(口頭禪): 실행이 따르지 않는 실속이 없는 말.(개혁이 구두선에 그치다/구두선에 지나지 않다/….)

쉽게 말해 '빈말, 대포, 허풍, 거짓말'인 것. 구두선을 구두탄으로 쓰는 식의 실수를 줄이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한자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다른 하나는 어려운 한자말 대신 쉬운 말을 쓰는 것. 자, 과연 어느 쪽으로 가야 할까.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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