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퇴임 대법관의 행보
2013년 초 한 장의 사진이 큰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초로의 남성이 허름한 차림으로 작은 편의점에서 일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다. 그 주인공은 중앙선관위원장에서 퇴임한 김능환 전 대법관. 대법관 취임 전 "퇴임 후에는 작은 책방을 열고 무료법률상담을 하고 싶다"고 말했던 그가 변호사 개업을 마다하고 아내가 마련한 편의점에서 일하는 보통 사람의 삶을 선택하자 '청백리의 표상'이라는 칭송이 쏟아졌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5개월 뒤 김 전 대법관은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이라는 말을 남기고 대형 로펌에 몸을 담아 씁쓸한 뒷맛만 남겼다.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인 퇴직 대법관은 30여 명에 이른다. 그중 상당수가 대형 로펌에 영입돼 있다. 퇴임한 대법관이 변호사 개업을 하는 이유는 역시 돈이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대법원에 상고되는 사건의 변호사 선임계에 이름만 올리고 받는 '도장값'이 수천만 원에 이른다는 말이 법조계에선 공공연하게 나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무총리에 지명됐다가 고액수임료 문제가 불거져 낙마한 안대희 전 대법관의 경우 퇴임 후 5개월 만에 벌어들인 수임료가 무려 16억 원이나 됐다.
꿋꿋하게 소신을 지키는 전직 대법관도 비록 손에 꼽을 정도로 그 수가 적지만 없지는 않다. 대표적인 인물이 부산 출신의 조무제 전 대법관이다. 판사 시절 재산이 6000여만 원에 불과해 '딸깍발이 판사'라는 별명을 얻은 그답게 2004년 퇴직 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올해 초 퇴임한 박보영 전 대법관은 소액사건을 전담해 '시골판사'로 칭해지는 여수시법원 판사를 지원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부산지역 향판 출신으로 2012년부터 대법관으로 재직하다 이달 초 퇴임한 김신 전 대법관이 조 전 대법관에 이어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부임키로 했다. 가뜩이나 사법농단 의혹으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고조되고 있는 때에 김 전 대법관의 행보는 신선하다.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자리를 거쳤으면 이후에도 그에 합당한 처신을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결코 지나친 욕심만은 아닐 것이다. 김 전 대법관이 부디 초심을 오래도록 간직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유명준 논설위원 joo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