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을 찾는 사람들] 16년간 600여 번 '역사 속으로'
입력 : 2018-07-29 19:14:14 수정 : 2018-07-29 22:30:59
보물 1845호 사택지적비 주인공을 찾아 나섰던 '박찾사' 회원들이 국립 부여박물관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 제공 박물관을 찾는다는 건 역사가 가진 수수께끼의 빗장을 푸는 여정이다.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며 찾아낸 지름길이 아닐 수 없다. 박물관은 시설이다. 고고학적 자료, 역사적 유물, 예술품을 수집·보존하고 전시해 연구와 교육에 기여하는 곳이다.
하지만 인공 건물만을 박물관으로 규정한다면, 자칫 박제화된 인식에 다다르기 쉽다. 옛 건축물이 즐비한 자리는 야외 박물관이 되고, 세월 흔적이 여러 겹으로 쌓인 지역은 그 자체가 박물관이 된다. 박물관 건물이 박물관의 한 전시물에 그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시각으로 두루 살피면 어느 한 곳 박물관이 아닌 데가 없으니 그게 바로 한반도다.
2002년부터 매주 답사
적극 참여 회원 500여 명
자료·영상으로 공부하고
전문가 설명으로 깊이 더해
박물관·유적지 등은 물론
문학기행·문화체험 병행
관광도시 부산 만들기 위해
다른 모임과 연합도 계획
문화유적 답사팀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의 생각도 이렇게 넓어져 갔다. '박물관'이 처음에는 유물들을 모아 놓은 건물만을 뜻하다가 서서히 국토 박물관으로 변해갔다. 흰옷이 우리 민족이듯 박물관이 전 국토라는 대유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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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찾사 회원들이 찾은 일본 임진왜란 출병지 히젠나고야성. |
'아는 만큼 보인다'는 금언 실천'박물관을 찾는 사람들(박찾사)'은 매주 박물관을 찾아 떠난다. 이들의 발걸음은 국토 박물관 관람이다. 인공 건물 속 박물관과 자연 속 박물관의 경계가 없는 나라에서 태어난 행운을 마음껏 누리는 사람들이다. '박찾사'는 2002년부터 답사 여행을 시작했다. 일반인들이 고적을 찾아 떠나는 모임을 부산 지역에서 보기 드문 시절이었다.
'박찾사'의 출발은 이 모임 리더 격인 장순복 대륙항공여행사 대표에 힘입은 바 크다. 매력적인 부산박물관 유적 답사 방식을 시민들에게 적용하려는 장 대표의 아이디어가 시발점이 됐다. 장 대표는 부산박물관 후원회 성격을 가진 부산박물관회에 오랫동안 몸담고 있다.
이 모임은 풍부한 자료집 준비에서 다른 곳과 차별성을 갖는다. 향토사 자료, 발표 논문 등에서 답사지 자료를 발췌한다. 신문이나 방송의 문화유적 관련 자료도 참조한다. 이런 자료집을 보는 시간은 앞으로 만날 명소나 유적과 미리 상봉하는 과정이다. 종이 자료집에 더해 미리 준비한 동영상도 여행 정보를 풍성하게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했다. 이 금언의 실천이다.
답사 횟수는 2015년 500회를 돌파한 데 이어 현재는 600회를 넘어섰다. 앞으로 1000회 돌파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게 언제 될지 손가락으로 헤아려보던 장 대표가 가늠을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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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신계리 마애여래좌상 |
집단 지성을 발휘하는 일정 짜기 탐방 대상은 박물관, 미술관, 전시관이 중심이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전통문화 계승자, 문학가, 예술인을 찾아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때에 따라 문학 기행이나 전통문화 체험 등으로 변신을 하기도 한다.
이런 여정이 횟수를 거듭하면서 '박찾사' 역할은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오류를 발견하면, 해당 기관에 정정을 요구한다. 관광객이 접근하기 불편한 사안에 대해 개선을 건의하기도 한다. 그 사례로 경북 구미시 황상동 마애여래입상의 보물 지정 기호 정정이나 마을버스 운행, 도보 진입 불편 해소 요구 등을 들 수 있다. 일제강점기 유산인 부산 가덕도 외양포 일본군 사령부를 일본인 관광 코스로 만들려고 팔을 걷고 나서기도 했다. 답사지 가치를 높이려 활동한 경우다.
답사 일정과 계획 짜기에는 일종의 집단 지성이 동원된다. 부산과 경주의 답사문화 전문가, 결혼·종택 권위자 등과 장 대표로 구성된 7명의 네트워크가 작동한다. 답사 일정은 중장기로 정해져 있고, 특별한 사안이 발생하면 그에 맞는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이들이 동행하면서 해설사 역할을 병행할 때도 있다. 여기에 답사지의 문화관광해설사, 지역문화원의 향토사학자, 박물관 학예연구사의 현장 설명을 곁들인다. 일반적으로 알기 어려운 지역 역사를 섭취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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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태실인 안동 노송정 고택. |
새로운 부산 만들 역사 공부 흐름 현재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회원 수는 500여 명. 이들이 자신의 사정에 따라 답사에 참여한다. 매회 40명 정도가 동행한다. 국토 박물관을 찾는 이들인 만큼 나름의 식견을 갖추고 있다. 3년 전 경기도 제부도를 찾아갔을 때 물때를 잘못 맞춰 세 시간가량 섬에 갇힌 적이 있었다. 이때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되레 섬 곳곳에서 새로운 걸 찾으며 그 시간을 즐기는 회원들을 보고는 감동했다는 장 대표다. 결혼 후 자녀들과 답사에 동행하거나, 외국 유학을 다녀온 후 다시 찾아오는 것처럼 열정적인 회원들도 많다고 한다.
'박찾사'는 국내 탐방에 머물지 않고, 우리나라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 외국 탐방도 진행하고 있다. 그래야 국토 박물관에 대한 이해도가 더 깊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백제 무령왕이 태어난 일본 섬, 임진왜란 출병지, 조선 도공을 신으로 모신 일본 신사 등을 방문한 이유다.
이 모임은 부산의 다른 곳과 연합해 시너지 효과를 올리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각 모임의 장점들을 모아서 새로운 관광도시 부산을 만들자는 복안이다. 이는 시민의 지역 문화 사랑을 높이자는 움직임과 접점을 이룬다.
장순복 대표는 "관광 유형이 쇼핑이나 유흥 위주에서 탈피하는 추세"라며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고 체험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밝혔다. 앞만 보고 달려온 중년들에게 역사 여행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으로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위안이 되고, 활력을 줄 수 있는 모임 유형이 궁금해진다. '박찾사'라는 모꼬지가 그 대답 중 하나가 아닐까. 문의 051-463-9009.
이준영 선임기자 gap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