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연출된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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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서 있는 두 소년 앞에 먹음직한 고기와 과일로 푸짐하게 식탁이 차려져 있다. 식욕을 자극하는 빨간색 식탁보 위의 음식을 앞에 두고도 먹지 못하는 상황은 충분히 영양을 섭취하지 못해 배가 불룩한 소년의 우울한 이미지와 극적으로 대비된다. 불평등이 만든 아이러니한 현실은 자연스럽게 보는 이의 감정선을 툭툭 건드린다. 이탈리아 출신 사진작가가 인도의 가장 가난한 마을에서 찍은 사진이다. 인도의 비참한 빈곤 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꿈의 음식' 시리즈다.

최근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이 사진들이 뜻밖의 비난에 직면했다. 작가가 아이들에게 "먹고 싶은 음식을 상상해 보라"며 연출한 사진인 데다, 사진에 나온 음식이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형이란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가짜 음식 앞에 세워두고 배고픈 소년들을 놀렸다는 비난까지 샀다. 급기야 아동 인권을 배려하지 않고, 충격적인 이미지만 부각한 '빈곤 포르노'라는 비판으로까지 이어졌다. '빈곤 포르노'는 가난을 자극적인 구경거리로 묘사해 동정심을 부르는 사진이나 영상을 말한다. 논란이 일자 작가는 "서구사회의 음식 낭비를 도발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도움을 구걸하는 소품처럼 소년들을 대상화한 연출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에티오피아의 식수난을 촬영하려던 외국의 한 방송국이 생각보다 물이 깨끗하자 어린 소녀에게 썩은 물을 마시게 연출했다는 극단적인 사례까지는 들먹이지 않더라도 '연출된 가난'은 상투적인 틀에 꿰맞춰 불쌍함과 가난에 대한 편견을 조장할 소지가 크다. 인도 뭄바이의 빈민가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삶을 체험하는 관광상품이나 서울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기획했던 쪽방 체험 프로그램이 '가난의 상품화'라며 비판받은 것도 가난한 이들을 대상화한 시선 탓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옥탑방 생활'을 두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푹푹 찌는 무더위에 에어컨도 없이 한 달 동안 가장 가난한 동네에서 살면서 "살아 봐야만 알 수 있는 삶의 문제를 찾겠다"는 박 시장의 진정성을 믿는다. 대권 행보를 위한 쇼로 치부하는 데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도 왜 우리 마을을 가장 못사는 동네로 낙인찍었느냐는 주민의 불편한 질문엔 답변이 필요하지 싶다. 이상헌 논설위원 t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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