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대법관에게 필요한 '편향성'
/송시섭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
검찰이 사법농단 의혹의 중심으로 의심받는 전 대법원장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내린 상황에서 국회에서는 신임 대법관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진행되었다. 청문회마다 단골로 등장하던 다운계약서, 자녀 교육을 위한 위장전입, 세금 탈루, 배우자의 탈법행위 등은 이젠 진부하다 못해 후보자들조차 웃음을 띠면서 실토하는 잘못일 뿐이다.
대법관 후보자 청문회 쟁점 된
정치적·이념적 편향성 논란
철학과 논리 갖춘 좋은 편향성은
대법원을 건강하게 만들 것
충돌하는 이해관계 조정할
균형 잡힌 '중립적 편향성' 기대
하지만 결코 쉽게 넘어가거나 간과해서는 안 될 주제가 있다. 바로 '편향성(偏向性)'이다. 이념적·정치적 편향성이라는 단어가 청문회 내내 후보자를 몰아세웠고, 후보자는 자신이 그토록 애정을 담아 활동했던 단체와의 단절을 선언했다. 후보자는 아마도 자신이 '편향적'인 대법관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듣기 싫었을 것이다. 당연히 잘못된 편견은 비록 그것이 개인의 도덕적·종교적 신념에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 법관의 덕목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대법관에게 있어 어떤 편향성은 무조건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향해야 할 것일 수도 있다. 철학과 소신, 그리고 명쾌한 논리로 무장한 편향성은 오히려 우리 대법원을 건강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대법관 후보자들의 좋은 편향성을 찾아내는 길이 무엇일까. 우선 청문회가 대법관 후보자의 내면의 생각과 살아온 궤적을 잘 드러내 주는 기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몸담고 활동했던 단체, 진행한 재판과 소송, 기고한 글과 강연 등에 대한 소신을 묻고 그런 주장을 하게 된 근거에 대하여 깊은 고백을 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청문회 위원의 자화자찬식의 장문단답식 진행보다는, 한 야당 의원이 했던 것처럼 짧고 핵심적인 질문으로 후보자의 긴 답변을 유도하여 후보자의 삶과 법률가로서의 원칙이 국민의 기억과 역사에 남도록 해야 한다. 분명히 수년 내에 맞닥뜨리게 될 중요한 결정 사항인 사형제, 국가보안법, 동성혼 등에 대한 분명한 답변을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후보자도 이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 대법관 후보자로서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식의 두루뭉술한 답변보다는 각 쟁점에 대하여 명확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자리로 삼아야 한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 확인된 후보자들의 '편향성'을 대법원은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먼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몇만 건의 사건 중 각 대법관의 편향성에 맞는 사건을 배당하여 비록 많은 기록더미 속에서도 자신의 역량과 소신을 발휘할 수 있는 사건과 만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맺어진 사건과의 인연을 통해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법언(法諺)처럼 정말 역사에 길이 남을 명문장과 논리로 자신의 편향성을 역사와 국민 앞에 토해 내야 할 것이다. 한 후보자가 어떤 대법관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판결을 좀 더 솔직하고 투명하게 쓰고 싶다'고 말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기존의 형식과 틀을 벗어나 대법관의 철학과 법리를 담은 판결이 당사자들에게는 명판결로, 법률가에게는 큰 공붓거리로 남길 바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미래의 대법관이 보여 줄 '편향성'은 단지 개개인의 대법관이 지녔던 신념들을 있는 그대로 판결에 투영하는 것만이 아니다. 대법관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편향성은 양극단의 편향성이 아니라 '중립적 편향성(neutral bias)'일 것이다. 거대한 이해관계가 최종적으로 충돌하는 대법원에서는 각 이해를 조정하는 부동표(浮動票·swing vote)로서 끊임없이 중심축을 잡아 줄 대법관이 필요하다. 미국의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은 동성결혼의 합법화를 지지했지만, 얼마 뒤 동성커플의 웨딩케이크를 제작 거부한 제과점 주인들에게 콜로라도 시민권위원회가 주(州)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던 결정은 당사자들의 종교적 권리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 것으로 잘못됐다고 판결했다. 진보와 보수의 뚜렷한 성향을 지닌 대법관 사이에서 그가 보여 준 중립적 편향성은 미국 대법원을 건강한 조정자로서 자리매김하게 했다. 우리도 균형 잡힌 편향성을 지닌 시대의 등불 같은 대법관을 찾아내야 한다. 아쉽게도 오랜 기간 균형추 역할을 해온 케네디 대법관이 최근 퇴임을 발표했다. 언젠가 한번 가까이서 이번에 새로 임명될 대법관들과 함께 그의 특강을 들을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그때가 되면 손을 들어 물어볼 것이다. 그의 건전한 중립적 편향성의 뿌리가 무엇이었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