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라이프] 맛 칼럼니스트 박상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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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만 평가? 음식 통해서 문화·역사적 맥락 되짚어요

맛 칼럼니스트 박상현(왼쪽) 씨는 맛은 주관적 관념일 뿐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한다. 박상현 씨 제공

사람들은 그를 '맛 칼럼니스트'라고 부른다. 음식을 소재로 맛깔스러운 글들을 마구 쏟아내니 틀린 명칭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그는 흔한 '맛집 기행문'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그의 혀와 손을 거치면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한 사회의 역사와 문화의 기제로 작동한다. 한의사가 맥을 짚어 환자의 질병을 진맥하듯 그는 음식을 짚어 그 사회가 형성된 역사적·문화적 맥락을 건져 올린다. 그러므로 그를 '맛 문화비평가' 내지 '맛 사회학자'라 부르는 건 어떨까.

회사 운영하다 결단 내려 제2 인생
기존 글과 차별화 된 글쓰기 성공
칼럼 쓰고 강의·방송 등 바쁜 나날

어묵·돼지국밥·밀면·명란젓 등
부산 음식 새로 조명하는 일 '앞장'

10여 년 일본 오가며 스테디셀러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발간도

■잘나가는 맛의 대가


'맛 칼럼니스트' 박상현(47) 씨는 요즘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그는 주당 최소 한 편, 한 달에 6편 정도 칼럼을 쓰고 광주일보와 한국문화재단 소식지에 고정 칼럼을 싣고 있다고 했다. 각종 잡지와 사보에도 한 달에 4편 정도 글을 싣고 한 달에 5~6건의 강의를 소화한다. SBS 라디오와 경인방송 라디오에도 고정 출연하고 있다. 부산시와 부산관광공사가 지난달부터 진행 중인 '부산 식도락 여행'의 진행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럼 수입은? "제 또래 보통 월급쟁이 정도는 벌고 있습니다. 허허."

이만하면 전문 맛 칼럼니스트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고 해도 될 법하다. 황교익이 1세대라면, 박상현은 2세대 맛 칼럼니스트로 자신만의 영역을 당당히 개척해 가고 있는 셈이다.

그의 글이 먹혀드는 것은 뭣 때문일까?

다음과 같은 그의 말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겠다. "저는 '맛있다'라는 형용사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맛에 대한 글을 쓴다는 사람이 '맛있다' 혹은 '맛없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생각합니다. 맛은 주관적 관념일 뿐이죠. 맛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거죠. 저는 맛의 원형 혹은 중간 단계를 밝히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야 맛의 현재를 알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거든요."

사람들은 그의 글을 통해 단순히 어떤 맛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자신의 과거와 현재 위치를 파악하고 싶어 하는지 모른다.

브리야사바랭은 저서 <미식 예찬>을 통해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다"라고 말했다. 그의 글에도 이러한 무모한 시도가 엿보인다. 

박 씨가 전통 장과 식자재 현장을 둘러보는 모습.
기존 글들과의 차별화 전략

맛 칼럼니스트로 그의 글쓰기는 기존 글들과의 차별화 전략에서 일정 부분 성공을 거뒀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최근 모 일간지에 '남북정상회담과 냉면'이라는 그의 칼럼이 실렸다. 그는 이 글에서 냉면의 역사적 맥락을 짚은 뒤 남북 간 이질적 요소들을 극복하고 동질성을 회복하는 데 냉면만큼 적합한 매개물이 없다고 주장한다. 남쪽 국민과 북쪽 인민 모두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유일한 매개물로서 냉면의 역사적·문화적 물매를 짚어낸다. 지금까지 분단의 상징이었던 냉면이 앞으로는 평화의 상징물이 될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특히 그는 부산 음식에 깊이 천착한다. 부산의 대표 음식인 어묵, 돼지국밥, 명란젓, 밀면 등이 그의 혀와 손을 통해 새롭게 조명됐다. 그는 부산 음식들을 통해 부산의 근대성을 읽어낸다. 개항,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경제 개발 등 부산 100여 년의 역사가 음식 속에 고스란히 투영돼 있음을, 그리하여 이 같은 음식을 먹는 것은 우리의 기억을 즐겁게, 혹은 아프게 소환하는 의식임을 드러낸다.

박상현이 처음부터 글쓰기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것은 아니다. 마흔 이전의 그는 평범한 사회인이었다. 웹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며 그럭저럭 살았다. 2000년대 초반 우연히 접한 와인의 세계가 그를 새로운 삶의 길로 인도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와인 동호회에 가입해 테이스팅 노트(시험 감상평)를 쓰면서 '취생몽사'라는 이름으로 블로그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맛집 후기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루 수만 명이 그의 블로그를 찾았다. 그는 어리둥절했다. "내가 글쓰기에 재주가 있었나?"

그때부터 그는 맛 관련 글쓰기에 빠졌으며, 5년 연속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되는가 하면 2011년 한국 100대 블로거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마침 그의 회사도 내리막길이었다. 2010년 40세가 되던 해 그는 결단을 내렸다.

"앞으로 40년 동안 경제활동을 할 것인데 뭘 먹고 살지, 심각한 고민을 했어요. 3가지 원칙을 세웠지요. 잘 할 수 있는 일, 혼자 할 수 있는 일, 즐길 수 있는 일." 결론은 맛 칼럼니스트였다.

그는 2010년부터 3년간 자발적 백수를 택했다. 절박하고 치열하게 공부하고 현장을 누비며 글을 썼다. 부산일보, 김해뉴스 등에 긴 호흡의 글을 쓰면서 글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 편집자와 독자들의 호평이 그를 고무했다.

그 와중에 2004년 처음 일본 규슈에 간 이후 일본 음식에 빠져 10여 년간 120여 차례나 일본을 드나들었다. 일본 음식에서 부산 음식의 짙은 그림자를 봤기 때문이다. 한일해협을 오가며 일본·음식·문화·역사 같은 단어가 들어간 책들을 섭렵하고 현장을 누볐다. 그 결과물이 2013년 말에 나온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다. 이 책은 6쇄를 찍어낼 정도로 스테디셀러다.
박 씨가 전통 장과 식자재 현장을 둘러보는 모습.
■식문화 수준 높이고 싶어

박상현은 이론과 현장 모두에 강한 글쟁이로 정평이 나 있다. 치열한 공부와 더불어 식자재와 음식 현장에 부지런히 나다닌 결과이다. 최근엔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동남아 등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수입의 3분의 1을 현장에 쏟아부을 정도다. 그는 이론 공부를 위해 일주일에 하루는 반드시 국회도서관에 파묻혀 지내는 학구파이기도 하다.

그는 "우리 사회에 먹거리 논쟁 즉, 신토불이니 로컬푸드니 하는 '운동'은 있으나, 음식에 대한 논리적 고민은 아직 안 된 상태"라면서 "한국적 기준에 적합한 '음식평론개론'을 한 권 남기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큰 호흡을 가지고 국민 식문화 수준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그의 향후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윤현주 선임기자 hoho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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