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많던 '청년 경비원', 아버지 눈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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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도 평소 같은 주말이었다. 아버지 김 모(59) 씨와 아들(26)은 저녁을 함께 먹고 해운대구 반여동 집에서 버스에 몸을 싣고 나란히 동구 범일동 한 아파트로 출근했다. 부자는 같은 아파트에서 한 조가 되어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날은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근무하는 야간 근무조였다.

검정고시를 치고 일찍 사회에 뛰어든 아들은 올 4월부터 팀장인 아버지를 따라 20대에 경비원이 되었다. 보안 회사에 취직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짬이 나면 보안 회사 취업에 필요한 경비지도사, 주택관리사 시험공부를 했다.

14일 부산서 차량 돌진 사고
부친과 함께 근무 20대 아들
후진 승용차에 치여 사망해

사고 차 운전자, 급발진 주장


14일 오후 6시 "순찰 다녀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아버지는 평소처럼 후문 쪽으로 순찰을 나갔고, 아들은 정문을 지켰다. 20분가량의 순찰 뒤 정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아버지에게 아들이 먼발치에서 보였다. 아들은 차량이 많은 시간이면 경비실 앞에 나와 적극적으로 교통을 정리하는 열정을 보였다.

그 순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아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갑자기 나타난 SM5 차량이 아들을 치고 경비실 옆 가로수를 덮친 것이다. 순식간이었다.

14일 오후 6시 25분 동구 범일동 마사회 주차장 방면에서 범일교차로 향하던 구 모(46·여) 씨의 SM5 차량이 도로 우측 상가 외벽을 들이받고 좌측으로 갑자기 후진해 맞은편 아파트 정문 경비실 쪽으로 돌진했다. 이 사고로 아들 김 씨가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1시간여 만에 숨졌다. 경찰 조사에서 구 씨는 "차량 기어를 P에 놓았는데 갑작스레 급발진을 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장면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아버지 김 씨는 "속도가 100㎞는 돼 보였다. 기억하기도 싫지만, 아들이 피할 새도 없었다. 급발진이라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아버지는 올해 초 아들에게 지나가는 말로 경비원 일을 권했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아들이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아들은 덥석 "한번 해 볼게요"라며 경비 일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경비원 일이 쉽지 않을 거라며 내가 말려야 했는데…"라며 "9월에 시험도 앞두고 있었는데…. 어제도 아들 순찰 보내고 내가 그 자리에 있어야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부산 중구의 한 병원에 차려진 빈소에는 성실했던 경비원으로 아들을 기억하는 아파트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아파트 주민 박 모(55·여) 씨는 "참 싹싹하고 듬직한 청년이었는데 말도 안 되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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