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극장, 당신들의 황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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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너와 극장에서'.

새삼스럽지만 나는 영화가 좋다. 극장의 불이 꺼지는 그 순간이 좋고, 영화 속 세계와 내가 사는 현실이 같거나 다름을 마주하는 그 느낌도 좋다. 기억해 보면 내 인생의 첫 번째 영화도 그런 황홀감을 안겨 주었던 것 같다. 한때 영화를 좋아했던 아버지는 주말마다 영화를 보러 갔는데, 그날따라 나도 아버지를 따라가겠다고 떼를 썼다.

내 인생의 첫 번째 영화는 '인디아나 존스'였다. 사실 '인디아나 존스'가 어떤 영화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건 영화가 아니라 그날 극장 안의 풍경이다. 컴컴한 극장, 자리를 꽉 채운 사람들의 기대에 찬 눈빛, 웅장한 사운드와 거대한 밀림의 이미지까지 난생처음 보는 극장의 풍경이 무서웠던 걸까. 나는 갑자기 울어대기 시작했고 조용한 극장은 한순간 날벼락을 맞은 듯 서늘해졌다. 당황한 아버지는 우는 나를 품에 안고 등을 토닥거려 주었지만, 영화를 끝까지 본 뒤에야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에피소드 3편의 '너와 극장에서'
극장 둘러싼 이야기 풀어내며
관객들 중심으로 잔잔한 공감

복합상영관 이어 넷플릭스 등장
언제 어디서든 영화 즐기는 시대
극장의 의미 되새기는 시간 돼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 건 얼마 전 관람한 '너와 극장에서' 덕분이다. 이 영화는 세 명의 독립영화감독들이 연출했으며 2017년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주목받았다. 최근 영화가 개봉하면서 관객들에게 잔잔한 공감을 얻고 있는데, 이는 극장에 한 번이라도 가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영화에는 세 편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유지영 감독의 '극장쪽으로'는 어떤 사건 하나도 발생하지 않는 단조로운 일상을 사는 선미에게 어느 날 '극장에서 만나자'는 쪽지가 전해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선미에게 극장은 기대와 설렘이 발생하는 공간인 동시에 외롭고 쓸쓸한 자신의 삶을 더 초라하게 만드는 공간이기도 하다. 정가영 감독의 '극장에서 한 생각'은 영화를 본 관객들이 영화감독에게 질문하고 감독이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영화다. 관객들의 질문은 어디선가 한 번쯤 들었음 직한 것들이지만 감독은 이 질문에 기상천외한 답변들을 내어놓고 있다. 이는 '극장쪽으로'와는 또 다른 극장을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재미를 선사한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김태진 감독의 '우리들의 낙원'으로 영화 속 인물들이 각자의 이유로 시네필 민철을 찾아다니고 있는 영화다. 사실 이 영화는 민철을 찾는 과정을 통해, 영화란 무엇인가를 그들 나름의 사정으로 설명하고 있어 흥미롭다.

극장이 영화가 될 수 있었던 시대를 지나와, 영화와 식사와 쇼핑까지 한 번에 해결 가능한 복합상영관(멀티플렉스) 시대가 열렸다. 아니, 이제는 결제만 하면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넷플릭스까지 등장했다. 극장에 가지 않아도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시대임에도 여전히 극장에 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너와 극장에서'가 말하는 극장은 영화를 소비하고 잊히는 공간이 아니다. 한 편의 영화를 보기 위해서 기다림을 견뎌야 하며, 길을 잃는 수고스러움을 거친 후에야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음을 표현하며, 단 한 편의 영화가 지친 노동자의 하루를 위로할 수 있다고 전달한다.

다시 말해 '너와 극장에서'의 극장은 영화를 보고 떠나는 공간이 아니다. 우리들에게 극장이 어떤 의미가 있는 장소가 되기를 원한다. 또한 너와 함께 영화를 본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만든다. 홀로 영화를 보더라도 우리는 영화(영화 세계)와 만날 수 있으며, 영화를 통해 혼자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들 각자의 극장들에는 설렘과 오해, 외로움, 발칙함, 위로와 사랑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너와 극장에서'는 극장을 말하는 동시에 관객들에게 내내 묻는다. 당신의 극장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이다.


김필남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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