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억대 연구비 횡령, 허술한 카드 규정도 '일조'
속보=부산대 연구소 회계 담당 직원이 연구비 수십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본보 10일 자 10면 보도)되면서 허술한 연구비 관리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연구비 전용 카드를 다른 용도로 쓸 경우, 그 금액만큼 채워 넣기만 하면 되는 '사비 입금' 관행이 비위를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구비 목적 신용카드 규정
용도 외 써도 입금하면 불문
부정사용 처벌 규정은 없어
구속된 직원 "센터장이 유용"
경찰, 센터장과 대질 예정
10일 부산 금정경찰서에 따르면 부산대 산학협력단 내 S센터의 회계 담당 직원 이 모(37·여·구속) 씨가 횡령한 것으로 추정되는 연구비는 20억~25억 원이다. 이 씨는 거래처에서 연구 재료를 연구비 카드로 결제하고 대금 중 일부를 현금으로 돌려받는 이른바 카드깡 수법을 썼다. 또 정산이 끝난 거래명세서와 카드전표의 날짜와 금액을 바꿔 연구비관리시스템에 허위 입력하는 방법도 활용했다.
경찰은 일단 이 씨가 이 같은 수법으로 지난해 9월부터 올해 4월까지 5억 원가량을 빼내 해외 유명 브랜드 핸드백과 의류 따위를 샀다고 밝혔다. 나머지 20억여 원의 행방에 대해 경찰은 추가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 씨는 센터 차원에서 이 같은 비위가 이뤄졌고, 이를 메우는 과정에 자신이 카드깡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씨의 대담한 범행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학계에서 행해지는 연구비 전용카드의 '사비 입금'이 자리잡고 있다. 사비 입금은 연구비 카드를 실수나, 부득이하게 다른 용도로 사용했을 경우 해당 연구비 카드 계좌에 사용한 금액만큼 채워 넣는 행위를 말한다.
실제 이 씨도 "센터장 K 교수가 연구비 카드를 사적으로 유용해 카드 대금을 메우면서 스트레스가 많았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K 교수는 해당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이 씨와 K 교수를 대질할 방침이다.
연구비 카드 관리와 사비 입금 등과 관련한 규정은 허술하기만 하다. 연구비 카드를 부정하게 사용했거나 이를 이용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다. 연구비 카드를 잘못 사용했을 경우 즉시 카드 결제계좌로 금액만큼 입금하도록만 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부산대 산학협력단 관계자는 "사비 입금은 착오로 연구비 카드를 잘못 사용했을 경우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부산 금정경찰서 관계자는 "사비 입금을 포함한 연구비 카드 이용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 체계 점검이 필요한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이 씨의 범행 사실이 드러난 것은 산업자원부가 수상한 연구비 집행 내역을 확인하면서부터다. 해당 프로젝트의 연구비가 단기간에 지나치게 많이 집행된 점을 의심한 것이다.
통보를 받은 부산대 산학협력단은 뒤늦게 이 씨의 횡령 정황을 발견하고 경찰에 고소했다. 카드깡과 무분별한 사비 입금이 이뤄지는 데도 대학 자체적으로 걸러지지 않은 것이다.
김한수 기자 hang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