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삼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장 "국어 잘하기 위해서라도 한자 공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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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문을 열자 거대한 '책의 장막'이 기자를 맞는다. 책꽂이 모퉁이를 도니 그제야 책 너머로 사람이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하영삼(사진·56) 소장이다. 그의 뒤로 '渡古齋'(도고재)라고 날렵하게 쓰인 당호 액자가 눈에 들어온다. "옛날로 건너 들어간다는 뜻도 되고, 옛것을 넘어선다는 뜻도 됩니다." 하 소장은 "1990년대 후반 중국 상하이에서 교환교수로 유학할 때 화둥사범대 저우빈(周斌) 교수가 써서 선물한 것"이라며 "저우 교수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서예 선생으로도 유명한 분이다"고 설명했다.

한국한자연구소는 지난 5월 경사를 맞았다. 한국연구재단에서 지원하는 올해 인문한국플러스(HK+) 해외 분야에 선정된 것이다. HK+는 세계적인 연구 역량을 키우기 위한 사업이다. 연구소는 앞으로 매년 12억 원 씩, 7년간 총 84억 원을 지원받는다. 인문학 프로젝트로는 대형이다. 주제는 '한자와 동아시아 문명'이고, 프로젝트 중심에 하 소장이 있다. 그는 "한국과 중국, 일본, 베트남 등 한자문화권의 한자어를 비교분석해 문화적 특성을 연구하는 것"이라며 "분석에 앞서 3만 3000개의 한자어를 추렸다"고 설명했다. 국제적 연구를 위해 하 소장은 연구교수 8명과 정년 트랙 교수 1명을 4개 나라에서 선발할 예정이다. 더불어 비교대상이 될 서구 문화에 대한 연구도 병행한다.

한국연구재단 지원사업 선정
7년간 84억 받아 '한자어 비교'
ICT 기술 활용 한자교육 계획


왜 한자어를 연구하는 것일까. "같은 한자문화권이기 때문에 이 한자어들의 어휘를 비교분석해 봄으로써 서양과 다른 독자적인 문명권의 가치를 증명해 보려고 합니다." 그가 예로 든 단어가 시계(時計)였다. "시계라는 단어는 비교적 최근에 일본에서 만든 것입니다. 만약 중국에서 만들었다면 어순상 계시(計時)라고 불렀겠지요. 시계에 해당하는 단어를 중국에서는 종표(鐘表), 베트남에서는 동호(銅壺)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단어를 통해 다름과 같음을 찾고자 하는 것이지요." 하 소장은 이런 시도가 탈(脫) 오리엔탈리즘의 한 방법이라고 의미를 뒀다.

한국한자연구소가 생긴 것은 2008년. 하 소장은 출범 때부터 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한국에서는 거의 유일한 한자연구소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 소장은 부산대 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정치대학에서 한자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땄다. "원래 문학에 관심이 있었는데, 폭넓게 공부하려면 중국부터 공부해야 한다는 고교 은사의 말씀을 듣고 중문학으로 진로를 정했습니다. 그 뒤 유학을 하러 가서 모든 학문의 시작은 문자라는 것을 알게 돼 한자학을 천착했습니다." 30대 초반 슬럼프가 찾아오기도 했다. 한동안 방황을 하다가 한자를 넘어 '한자 문화'를 연구함으로써 깊은 수렁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하 소장은 "동양적 사유 방식은 순환적, 연속적, 통합적"이라며 "한자도 기능 중심으로 통합하면서 관계적 사유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예로 든 것이 하늘 천(天) 자. "천(天)은 사람(人) 위에 머리를 그린 꼴입니다. 원래 '정수리'라는 뜻인데, 사람과 하늘을 연결하고 있는 것이지요. 한자는 사람을 중심에 두고 세상을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친김에 그는 뇌(惱)에 대해서도 설명을 했다. "서양적 사고는 머리와 심장은 별개라고 보는데, 동양에서는 머리가 심장(心 부수)에서 나온다고 보는 것이지요. 우리만의 독특한 사유 방식입니다."

하 소장은 우리의 한자교육에 대해서도 아쉬워했다. "한자는 인류가 만든 지혜의 산물이고, 아주 창의적인 상품입니다. 한자어가 60~70%에 달하는 국어를 잘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한자를 공부해야 합니다." 그는 "물리(物理)는 '사물(事物)의 이치(理致)'이고, 화학(化學)은 '변하는(化) 학문'인데, 제목의 뜻부터 잘 모르고 시작하니 그 학문을 더 어렵게 느낀다"며 "사랑 애(愛) 자도 사람이 옆으로 고개를 돌린 모습으로, 결국 옆 사람에 대한 배려의 뜻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하 소장은 앞으로 ICT(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한 한자교육도 고민 중이라고 귀띔했다.

글·사진=김마선 기자 edu@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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