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과거사위 '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 26년 만에 재조사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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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억울한 옥살이 우린 살인범이 아닙니다"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본조사 대상에 포함된 '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의 피의자 장동익(왼쪽) 씨와 최인철 씨가 부산의 한 커피숍에서 자신들이 당했다는 고문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백상 기자

1991년 32세와 29세의 청년이 이른바 '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두 사람은 50대가 되어서야 모범수로 석방됐다. 그리고 지난 2일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이 사건을 본조사 대상에 포함시켰다. 사전조사를 해 봤더니 두 사람이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무기징역 복역 5년 전 석방
"구타·물고문에 거짓 자백"
지난해 정식으로 재심청구

당시 기소 내용 허점 많아
부산고법 재심 결과 주목

"용서라니요. 우리는 그렇다고 쳐도 가족들이 무슨 죕니까."

부산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장동익(58), 최인철(55) 씨는 비교적 밝아 보였다. 1급 시각장애인인 장 씨는 틈틈이 '사법인권'에 대한 특강을 하고 지내며, 직장인 최 씨는 20여 년간 미뤘던 평범한 가장의 의무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용서하고 잊기엔 지난 세월이 너무나 억울하다"고 입을 모았다.

1991년 11월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두 사람은 '공무원 사칭죄'로 사하경찰서에 불려갔다. 사하구 을숙도에서 최 씨가 자신을 공무원으로 착각한 무면허 운전자가 준 3만 원을 돌려주지 않은 게 문제였다. 장 씨는 그날 최 씨의 차를 얻어 탔다. 그때만 해도 두 사람은 알고 지낸 지 얼마 안 돼 서먹한 사이였다고 한다.

조사를 시작한 경찰은 갑자기 당시 발생한 2인조 차량 강도 19건 목록을 내밀더니, 다짜고짜 범행을 실토하라고 했다. 조사 3일째 처음 본 경찰관이 피해자라며 나타나 "2년 전 차량강도를 당했는데 너네 얼굴을 똑똑히 기억한다"고 소리쳤다.

그렇게 차량강도로 몰리고 몇 시간이 지나자 이번엔 낙동강 살인사건을 실토하라고 했다. 1990년 1월 4일 새벽 낙동강변 갈대숲에서 차를 타고 있던 여성이 성폭행당한 뒤 살해되고, 동행한 남성은 격투 끝에 도망친 사건이었다. 범행도구나 지문이 없는 장기미제 사건이었다. 결국 두 사람은 체포 10일 만에 3차례 자술서를 쓰고 기소됐다.

그 사이 고문이 있었다는 게 두 사람의 증언이다. 책상에 매달려 반복적으로 구타, 물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최 씨는 "아직도 겨자를 못 먹는다"며 "물고문 때 겨자를 넣기도 했는데 너무 끔찍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본인 자술서와 목격자라며 나타난 경찰관의 진술뿐이었지만, 검찰은 일사천리로 이들을 기소하고 사형을 구형했다. 장 씨는 "법정에서 고문을 증언해도 소용없었다"며 "사형 선고를 받았으면, 아마 1997년 마지막 사형집행 때 죽지 않았을까 한다"고 말했다.

무기징역을 받고 두 사람은 다른 교도소에 수감돼 생활했다. 그러다 우연히 병원시설에서 마주치자 장 씨는 억울한 마음에 최 씨에게 다짜고짜 주먹을 날렸다. 한참을 맞던 최 씨와 부둥켜 안은 장 씨는 울고 또 울었다. 살인범이 돼 이혼을 하고 딸에겐 숨겨야 하는 아빠가 돼야 하는 신세가 너무 서러워서였다.

2013년 모범수로 출소한 뒤에야 이들은 자신들의 무죄 입증을 위해 나설 수 있었다. 2016년 박준영 재심 전문 변호사를 만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박 변호사가 조사해 보니 △살해현장과 다른 자술서 내용 △경찰관이 당했다는 강도사건이 신고도 되지 않은 점 △경찰관이 지목한 차량번호와 실제 차종의 불일치 등 기소 내용의 허점이 너무 많았다. 박 변호사 측은 몇 달간 부산일보에서 옛 기사들을 검색하며 당시 경찰의 잦은 고문행태에 대한 입증자료를 수집하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항소심에서 이들을 변호한 문재인 대통령은 이후 "변호사 35년간 가장 한이 남는 사건"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지난해 두 사람은 정식으로 재심청구를 했고, 이제 이 사건은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 본조사에까지 포함됐다. 재심재판은 현재 부산고등법원에 계류 중인데, 분위기는 좋다. 장 씨는 "재심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되어도 과연 이 한이 풀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편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지난 2일 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 외에 장자연 리스트 사건(2009년), 용산참사(2009년), 정연주 전 KBS 사장 배임 사건(2008년)을 본조사 대상에 포함시켰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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