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성매매 수요자 포럼 "성매매는 남성의 수요 탓"… 집단 남성문화에 반기 들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책 <성매매 안 하는 남자들>을 출간한 호랑이출판사 대표이자 수요자 포럼 회원인 허주영(왼쪽) 씨와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변정희 소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불금 저녁. 한 주를 살아내느라 지친 이들이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는 시간. 세상은 넓고, 놀거리는 차고 넘치는데 토론을 하겠다고 모이는 이들이 있다. 매달 두 번째 금요일 저녁. 그들의 스터디는 열띤 토론 덕분에 후끈한 불금을 맞는다. 토론의 주제는 성매매. 사회 정의를 구현하려는 언니들의 모임일까. 뜻밖에도 성매매를 '수요'의 문제로 보고, 남성의 시선에서 논의를 확장해 나가는 형들의 모임이다.

이 기특한 모임의 이름은 '부산 성매매 수요자 포럼'. 2016년 봄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의 제안으로 출범해 매달 한 번씩 공부의 깊이를 더한지 어느덧 2년이 됐다.

성 산업 수요 문제 고민 위해
매달 30~40대 남성들 열띤 토론
"그간 '남성의 성' 말할 공간 부족"

대구·전주 등 성매매 집결지 견학
거듭된 토론 속 생각 묶어 책 출판
"남성 스스로 해방 계기 됐으면…"

수요자 포럼은 그동안 '공급'(성매매 여성)의 문제로 여겨온 성매매를 '수요'(성 구매자 남성)의 차원에서 들여다보기 위해 출범한 남성 모임이다. 이름은 수요자 포럼이지만 사실 '수요자답지 못한 남성 모임' 혹은 '수요 문제를 고민하는 남성 모임'. 수요자 포럼은 지난 5월 회원 7명과 뜻에 공감하는 활동가 등 11명의 글을 담은 책을 냈다. 제목은 <성매매 안 하는 남자들>.

성매매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한 회원들의 시선은 토론을 거듭할수록 남성문화, 남성성, 섹슈얼리티로 확장돼 갔다. 포럼 회원이자 책 출판을 맡았던 허주영 호랑이출판사 대표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지 않고도 남성의 성과 남성의 역할, 성문화를 이야기할 장이 그동안 남성들에겐 정말 없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이 진지한 논의의 장이 모임을 이어갈 동력이 됐다.

■그들이 성매매를 이야기하는 이유

2016년 첫 수요자 포럼 개최를 알리는 공지.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제공
여성가족부는 3년 주기로 성매매 실태조사를 한다. 여성가족부의 '2016 성매매 실태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남성 2명 중 1명은 성 구매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설문에 참여한 성인 남성 1050명 중 50.7%는 성 구매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2013년 56.7%에 비하면 줄어든 수치지만, 평균 성 구매 횟수는 8.46회로 3년 전 조사 때 6.99회보다 늘었다.

4699만. 한 나라의 인구일 법한 이 거대한 수는 2010년 여성가족부 '성매매 실태 조사 보고서'가 밝힌 우리나라 연간 성매매 추정 건수다. 성매매 거래액은 6조 6258억 원. 그러나 실제 거래액은 이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2003년 성매매 거래액이 23조 원이었다는 통계가 있을 만큼 성 산업은 '은밀한 호황'을 누리고 있다.

변정희 살림 소장은 "성 산업이 호황을 누리는 근본 원인은 남성들의 수요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매매는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성을 구매하는 남성의 문제"인 것이다.

2004년 9월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매매 방지법) 시행 이후에도 성 산업은 여전히 호황이다. 변 소장은 "적지 않은 한국 남성에게 성매매는 '일탈이 아니라 일상'인데 성 구매자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부산 성매매 수요자 포럼'은 미국 성매매·인신매매 방지 웹사이트 '디맨드 포럼(Demand Forum)'에서 따온 말이다. 살림은 미국처럼 성 산업을 수요 차원에서 연구하는 모임이 부산에도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뜻 있는' 남성 회원들을 모집했다. "성매매를 매개로 한 남성들의 광범위한 연대, 집단적 남성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한 성매매 문제는 해결될 수 없어서"다.

포주나 성매매 여성을 잡아들여 봐야 수요가 있는 한 성매매는 사라지지 않는다. 성매매 여성은 우리나라 여성에서 가난한 다국적 여성으로 바뀔 뿐. 성매매 시장은 10대, 외국인, 발달장애인 여성을 끌어들여 변함없는 호황을 구가한다. 변 소장은 "성매매를 남성문화의 일부로 암묵적으로 승인하는 한 단속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허 대표에게 성매매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성매매를 하지 않는 이유는 회원마다 다르다"며 "안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매매를 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이유를 물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우문현답.

■남성을 이해하는 언어를 찾아가다
'지도에 없는 마을' 대구 성매매 집결지 자갈마당을 견학한 수요자 포럼 회원과 살림 관계자들.
'부산 성매매 수요자 포럼'에선 30, 40대 남성 회원 6명이 활동 중이다. 회원 7명 중 한 사람은 얼마 전 일본으로 이주했다.

그들은 매달 함께 읽을 책을 고르고, 토론하고, 전주 대구 부산 등 성매매 집결지도 찾아다녔다. 지난 8일 열렸던 이달 포럼은 책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에 대한 토론으로 진행됐다.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는 성 판매 여성의 글을 묶어낸 책. 말의 지분을 갖지 못했던 당사자의 생생한 외침과 증언이 아프고 날카롭다.

변 소장은 "성매매를 두고 성 노동이냐 성매매 피해냐 성범죄냐 하는 논쟁 속에 정작 당사자들의 시선은 빠져 있었다"며 "이들의 목소리가 결론은 아니고, 해석하고 방향성을 정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고 했다. 결국 입장은 수요 창출자(남성)가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느 남성과 달리 성 평등에 민감한 회원들 사이에도 생각의 차이는 존재한다. 성매매 관련 토론이 늘 원활했던 것도 아니다. 모든 게 상품화하는 시대. "성을 사고파는 건 왜 안 되나" "개인의 선택과 의지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다른 남성들은 어떻게 생각할까'까지 염두에 두면서 토론의 주제는 성매매에 국한되지 않고 점점 확대돼 갔다.

진지한 토론이 거듭될수록 사고의 체계가 잡혀갔다. 그들은 '온전히 누구를 탓할 수도 없어서 분노가 일고' '나도 별로 다르지 않은 인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아' 갔다.(책 <성매매 안 하는 남자들> '남자들의 이야기가 필요해' 중) 그리고 '일상 속 크고 작은 폭력에 무뎌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성찰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깨달음도 얻는다.(같은 책 '목 없는 마네킹 그리고 질문을 닫지 않기' 중)

허 대표는 "페미니즘은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 학문"이라며 "(수요자 포럼을 통해) 우리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언어를 더듬더듬 찾아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요자 포럼은 성매매 여성들을 돕기 위한 게 아니라 남성 스스로 생각을 변화시키고 단단해지는 계기를 마련하려는 모임"이라고도 했다. 그들에게 포럼은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해방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려는 남성들의 고민이 시작됐다.

글·사진=강승아 선임기자 seung@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