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의 스크린산책] 너와 극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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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일어난, 소소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 셋

'너와 극장에서'. 서울독립영화제 제공

누구나 극장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영화를 함께 봤던 그 사람 때문에, 팝콘 냄새가 유난히 좋았던 그 공간의 기억 때문에, 정겨운 근처 골목과 맛 집 때문에 우리는 극장을 기억한다. 세 개의 에피소드를 묶어 놓은 '너와 극장에서'에는 극장 안팎에서 생길 수 있는 소소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충무로에서 주목하는 세 신예감독들의 개성과 재능을 엿볼 수 있다.

충무로가 주목하는 세 신예감독
유지영·정가영·김태진 단편 묶어

'극장 쪽으로'(감독 유지영)에는 지방도시에서 무료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선미'(김예은)가 등장한다. 그녀는 어느 날, '극장에서 만나자'라는 익명의 쪽지를 보고 호기심에 독립영화전용관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녀는 담배를 피러 나갔다가 비슷비슷한 골목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 극장을 찾는 길이 청춘들의 인생길을 찾는 것만큼 지난하다. 고혹한 흑백 영상이 작은 동네 극장과 주변 골목길을 낭만적으로 묘사하고, 개인주의적 현대인들의 특징을 보여주는 디테일 또한 훌륭하다.

'극장에서 한 생각'(감독 정가영)은 불 켜진 극장 안을 보여준다. 영화감독 '가영'(이태경)은 자신의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를 하고 있다. 지나치게 솔직한 그녀의 답변 때문에 관객들은 당황하기 시작하고, 한 관객이 예민한 질문을 던지면서 가영은 흥분하고 만다. 감독의 경험과 영화가 불과분의 관계라는 주제가 단순하지만 명료한 영화의 형식 안에 잘 담겨 있다. 현실과 영화적 상상력의 경계에 대한 오래된 질문을 직설적 화법으로 제시하는 에피소드다.

'우리들의 낙원'(감독 김태진)은 '은정'(박현영)이 출납리스트를 들고 사라진 '민철'을 찾아가는 로드무비다. 은정은 수소문 끝에 민철이 씨네필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얼떨결에 동행하게 된 BJ, 기자들과 함께 예술영화전용관으로 향한다. 여기서 은정은 민철의 권유로 뜻하지 않게 고전영화를 관람하게 된다. 이 단편의 제목이자 프랭크 카프라 영화의 국내 제목이기도 한 '우리들의 낙원'은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극장이 갖는 의미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은정은 하루 동안의 숨바꼭질 대가로 민철의 낙원을 맛본다.

각각의 단편들은 독립되어 있지만, 극장이라는 공유된 키워드 때문에 관객들의 의식 속에서 유기적으로 조합된다. 특히 존폐의 위기와 씨름하는 독립예술극장에 대한 애틋함이 공히 느껴진다. 영화관보다 '극장'이라는 단어가 더 친숙했던 시절, 이에 얽힌 관객 각자의 추억을 소환하는 작품이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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