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난민 문제, 인도(人道)에서 인권(人權)으로
/송시섭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
제주도를 찾아온 예멘 난민 문제로 나라가 떠들썩하다. 내전으로 인해 난민이 급증하면서 말레이시아를 거쳐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제주도가 최종 귀착지가 되는 바람에 수백 명의 난민이 제주도에 들어왔다는 소식은 난민 문제를 유럽 어느 나라의 일로만 보았던 우리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예멘 난민과 관련한 괴담들이 떠돌면서 추방 청원이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을 채웠고, 다양한 의견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이제 우리나라도 난민 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을 맞이한 것이다.
난민 문제를 다룰 현행 '난민법'은 2013년부터 시행됐다. 종전 '출입국관리법'으로 규제해 오다 1992년에 가입한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을 이행하기 위해 제정했는데, 동아시아 최초의 난민 관련 법률이다. 이는 난민 문제를 '국가 안보(national security)' 차원이 아닌 '인간 안전(human security)' 차원으로 보겠다는 입장의 변화였다. 아직은 시행 초기이고 그동안 난민 인정도 극소수에 그쳤기에 사회적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논란 확산되는 예멘 난민 문제
동아시아 최초 난민법 제정은
'인간 안전' 차원 인정한 것
인도적 시혜 아닌 인간의 권리
환대-배척 이분법 벗어나야
인권 앞장서는 선도 국가 계기로
'난민법'은 난민의 정의를 '인종, 종교, 국적 등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수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해 국적국의 보호를 받지 못하거나 대한민국에 입국하기를 원하는 외국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가운데 등장하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well founded fear)'가 이제 우리에게는 '외국인 혐오(xenophobia)'로 왜곡되어 나타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제주도민 중 일부는 지역사회의 안전을 이유로, 국민청원을 하는 다수의 국민은 국가 재정의 비효율적인 집행을 이유로 외국인 배척의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로 활동하는 한 유명 배우의 발언에 대한 뜨거운 찬반 논란을 보면서 난민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우선 난민 문제를 인도적인 차원으로만 국한하여 보려는 시각을 지양해야 한다. 우린 오랫동안 다양한 사회적 약자에 대해 인도적 차원의 '시혜'를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대표적인 경우가 장애인 차별 문제다. 장애인의 오랜 투쟁의 결과로 제정된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의 시행으로 장애인에 대한 시각이 '시혜에서 권리로' 격상되었던 역사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난민 문제도 예외는 아니다. 난민 문제를 인도적인 차원에서 접근하자는 주장은 자칫 '난민법'을 통해 정립된 외국인에 대한 인권의식을 다시 시혜로 되돌릴 우려가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난민 문제를 인권의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야 할 때가 되었다. 이러한 관점은 감정적인 차원에서 논의되는 '환대'냐 '배척'이냐 하는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우릴 자유롭게 해 줄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시각의 교정을 통해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제사회의 중요한 이슈가 된 난민 문제에 대한 인적·물적 시스템의 구축 및 확장을 준비해야 한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이 난민신청자들에 대한 심사를 시작한다고 하나 난민 심사 대상자는 486명이고, 난민심사관은 3명에 불과하다. 하루에 2~3명씩 조사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6~8개월의 시간이 소요되는 장정이 될 것이다. 심사관의 확충과 행정적 지원은 말할 것도 없고, 장기적으로 전문가 양성이 필수적인 이유다. 아울러 '출도제한조치'는 난민 문제를 제주도민만이 모두 떠안게 되는 불합리를 낳을 수 있다. 세심한 재검토를 통해 난민 문제를 제주도만의 문제로 만들지 않고, 정부 차원에서 책임지는 결단이 필요하다.
현재 대한민국은 사상 초유의 대규모 난민 사태를 접하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로 인해 여론이 분열되고 있다. 정부도 분명한 입장 표명보다는 '사태 파악'이라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에서 몇천, 몇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는 상황에 비하면 정말 초입 단계에 불과하고 지금까지 우리의 난민 인정률이 4% 정도에 불과한 것을 보면 결과적으로도 크게 놀랄 상황이 아닐 것이다. 이제 감정적인 차원을 내려놓고 '국제협약'과 '난민법'을 근거로 인권이라는 시각에서 다소 서툴지만 당당한 행보를 할 수 있길 바란다. 이번 사태를 잘 헤쳐 나간다면 예멘 난민 사태는 제주도민에게나 우리 국민 모두에게 인도(人道)에서 인권(人權)으로 가는 길잡이가 되고, 대한민국이 아시아에서 난민 정책 선도적인 국가가 될 수 있는 길을 터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