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여자의 역사' 여성에만 '추함' 낙인, 남성 권력의 질긴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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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여자의 역사/클로딘느 사게르

오롯이 여성에게 쏠린 '추함'의 낙인은 수천 년간 이어지며 여성을 억압해왔다. 보다 많은 권리가 확보된 현대 사회에서 '못생긴 여자'의 설 자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좁아졌다. 호밀밭 제공

'광고는 존재하지도 않는 추함의 위협을 계속 경고하고 그 결과 여성을 하나의 기준 안에 가둔다. 아름다움의 기준에서 벗어나 있는 개성은 오히려 존재를 하나의 유형 안에 유폐시키는 구실로 이용하게 된다.'

<느리게 걷는 즐거움>의 저자이자 스트라스부르대 사회학과 교수인 다비드 르 브르통의 말이다. 외모에 집착하는 오늘날, 엄밀히 말하면 여성의 외모에 더욱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현대 사회는 사실 새로운 게 아니다. 남자가 쏙 빠진 '추함의 역사'는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갈 만큼 지난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외모에만 기준 두는 '여성 혐오'
질서 흔드는 여성 '추녀'로 규정
근현대 들어서도 바뀌지 않아

"추함에 대한 복수나 처벌 안 돼"

여성의 외모를 바탕으로 한 여성 혐오와 남성 권력의 질긴 역사를 톺아본 책이 나왔다. 몸의 문제를 다각도로 다루는 한편 아름다움과 추함에 천착해 온 클로딘느 사게르 철학 교수의 <못생긴 여자의 역사>다. '아름다움과 추함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정의하는 데 이용되어 왔다'는 저자는 여성의 존재 자체를 추하다고 본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 르네상스 시대, 그런 여성성에 문제를 제기했던 근대 시대, 여성이 추한 외모의 책임자이자 죄인이 되어버린 현대 등 세 시기로 나눠 다양한 형태로 규정된 '못생긴 여자'를 추적한다.

못생긴 여자는 실로 다양하다. 피부색, 머리 색깔, 얼굴뿐 아니라 결혼, 모유 수유, 가난, 문화예술 및 정치활동 등에 이르기까지 소위 '기준'에 벗어난 여성은 모두 추녀 취급당했다. '남성은 자신의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여성 스스로가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가치 체계에 문제를 제기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여성은 추하다는 비난과 함께 수모를 당했다. 그것은 기존 질서를 흔드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보복이었다'는 저자의 말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칸트 등 유명한 철학자와 작가는 물론 사상가이자 사회주의자로 프랑스혁명을 관통한 프루동조차도 '남성과 동등한 여성은 본성을 잃어버리고 타락한 존재가 된다. 평등은 여자를 추하게 만들며 결혼을 해체시킬 뿐'이라고 했을 만큼 소위 사회 주류를 이루는 남성 지식인들에 깊이 뿌리박힌 여성 혐오는 오랜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여성들이 보다 많은 권리를 쟁취해나간 근현대 들어서도 추녀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은 바뀌지 않는다.

동화 속에 나오는 추녀들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아름답고 재생산에 충실한 몸을 지닌 이상적인 여성과 대립하는 추한 여성은 동화 속에서 나쁜 요정, 마녀, 계모, 여자 식인귀 혹은 못생긴 소녀로 나온다.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접해온 동화는 사실 추한 외모가 추한 정신으로 귀결된다는 편견을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남성의 추한 외모는 불리한 조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성 작가가 쓴 동화에선 추한 남성과 추한 여성에 대한 시선이 동일하다는 점도 흥미롭다. '추함에 대한 복수나 처벌은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용서할 수 없는 도덕적 추함'이라고 일갈하는 저자의 마지막 말에 한동안 시선이 머문다.

책 말미에는 '추함은 낙인이다'는 제목의 저자 인터뷰도 실렸다. 저자는 "지금보다 몸의 외양이 중요했던 시대는 없었다"고 단언한다. '여성들에게 못 생길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미셸 투르니에의 말을 인용한 저자는 "아름다움은 여전히 성공과 행복으로 가는 통행증이고 추는 여전히 터부"라고 말한다.

미투 운동으로 사회에 한 획을 그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먼 현실. 못생긴 여자의 역사는 또 다른 형태로 변주될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역사'라는 새로운 장으로 뛰어넘을 것인가. 클로딘느 사게르 지음/김미진 옮김/호밀밭/364쪽/1만 5800원.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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