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오거돈의 해양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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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충 해양산업연구소장 한국해양산업협회 사무총장

지방선거가 끝났다. 온 동네를 물들인 형형색색의 선거운동도, 시시때때로 울린 전화와 문자 메시지도 한순간에 멈췄다. 한여름의 매미 떼 울음이 그칠 때가 이랬을까.

전국적으로 4016명이 당선의 기쁨을 누렸다. 촛불 민심은 통일 민심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지방선거에 투영됐다. 여당의 압승은 이미 예상된 것이라고 해도 야당들의 지리멸렬은 생각보다 훨씬 더 참혹했다.

與 압승 예상됐지만 野 참패 더 참혹
현직 책임 강하게 묻고 새 시장 선택
관행 아닌 '실천'하는 시장 원해
논공행상 위해 '준비된' 시장은 곤란

부산은 현직의 책임을 강하게 물었다. 그리고 3전4기의 노장인 오거돈을 새 시장으로 선택했다.

오 당선인은 대통령의 덕을 톡톡히 보았지만 선거 초반부터 '변화'를 선도한 것도 주효했다. 부산시장 도전이 무려 14년에 달했으니 '표심 변화'를 바라는 갈증이 오죽 컸을까. 그는 도전에 앞서 "부산의 변화와 발전에 대한 절실함이 곧 '일생을 통해 이뤄야 할 가치와 신념'이다"라고 외쳤다. 진정성 여부는 두고봐야 하겠지만 부산시장에 대한 욕구는 다른 후보들을 확실히 압도했다.

당락을 가른, 많은 표 중에는 해양수산인의 바람도 담겼다. 오 당선인은 일찍부터 해양수산인의 지지를 받았다. 그 스스로도 해양수산인을 표방했고 이력에서 해군장교, 해양수산부 장관, 한국해양대 총장을 유난히 더 강조했다.

그가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어떤 성과를 올렸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역 해양수산인들이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한 데는 '자위'의 측면이 크다. 해양수산에 오랫동안 발을 담갔고 시선을 두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를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본 것이다.

그는 공약 중 많은 부분을 해양수산 분야로 채웠다. 동북아 해양수도 건설은 그만의 공약이 아님에도, 선거 프레임을 구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항만과 공항이 함께 발전해야 해양수도를 만들 수 있다는 해양수산인의 희망을 수렴한 결과다.

선거 기간 내내 설전이 계속된 가덕신공항은 그에게 표를 몰아준 지렛대 역할을 했지만 당선 이후 그것은 되레 큰 짐이 될지 모른다. 실천하지 않는다면 4년 내내 족쇄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공약이 아니더라도 새 시장의 책상 위에는 당장 해결해야 할 해양수산 민원이 산적해 있다. 부산항 미세먼지는 물론이고 피폐한 수산업을 일으켜 세울 묘안을 내놓아야 한다. 조선과 조선기자재산업의 부활 기대에 부응하는 정책과 예산을 확보하는 것도 급선무다.

지방자치제라고 해도 시장이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규제를 풀고 예산을 끌어오려면 중앙정부의 도움이 절실하다. 시장이 직접 발로 뛸 때 효과는 배가 된다.

부산과 경쟁 관계인 한 광역자치단체장이 예산을 확보하고 규제를 풀기 위해서 중앙정부를 임기 동안 100차례 이상 직접 오갔다는 것은 결코 이웃의 전설이 아니다.

오 당선자의 신념이 공약(公約)인지, 공약(空約)인지는 첫 직제 개편과 인사가 시금석이 된다. 해양수산국을 부시장급 해양수산본부로 승격하는 것은 해양수산인의 오랜 바람이었고 그 역시 여러 차례 공감했다.

서울시가 서울 디자인 도시를 표방하면서 통합적 업무를 추진할 부시장급 본부를 설치하고 미술 전공자를 영입한 것은 지금도 회자하는 성공 사례다. 관행에 따르지 말고 중요한 업무에 가장 큰 방점을 찍는 것이 신념이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준비된' 시장임을 외쳤다. 혹여 '논공행상을 위해 준비된 시장'이라는 말이 나오는 일이 없도록 처음부터 단속을 잘해야 한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단 한 번의 기회(One-time shot)밖에 없다"고 외쳤다. 부산도, 부산항도 그만큼 절박하다. 임기 동안 '오거돈을 믿은 바보'라는 자책이 부산항 곳곳에서 들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cho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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