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배다른 형제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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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지난주에 이 난에서 이야기한 '선친' 때문에 놀랐다는 독자가 꽤 있었다. 막연히 아버지를 높여서 부르는 말인 줄 알았는데, '돌아가신 아버지를 가리키는 말'이라니 그럴 만도 했다. 어쨌거나, 될 수 있는 한 한자·한자어를 쓰지 않되 쓰려거든 제대로 쓰자는 얘기, 계속 이어간다.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을 다시 보자.

*선친(先親): 남에게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를 이르는 말. =고(考)·선고(先考)·선군(先君)·선군자·선부(先父)·선엄(先嚴)·선인(先人).(오늘 선친의 제사가 있어서 일찍 들어가야 합니다.)

선친과 같은 말인 '고(考)·선고(先考)·선군(先君)·선군자·선부(先父)·선엄(先嚴)·선인(先人)'을 가만히 들여다보자면, 이런 한자말 대신 '아버지·아버님'으로 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느낀다.

한데,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를 이르는 저런 말 외에, '돌아가신 남의 아버지'를 높여 이르는 말은 따로 있다. 바로 이런 말들.

'선대인(先大人)·선고장(先考丈)·선장(先丈).'

게다가, 남의 아버지가 살아계시기라도 하면 또 이렇게 써야 한다.

'춘부장(椿府丈)·영존(令尊)·춘당(椿堂/春堂)·춘부(椿府)·춘부대인(椿府大人)·춘장(椿丈)·춘정(椿庭/春庭).'

이러니, 순우리말이여, 축복받을진저. 그런데 '선친'을 쓸 때, 돌아가셨다는 사실 말고도 신경 써야 할 게 하나 더 있다. 저 표준사전 뜻풀이에서 '돌아가신'을 빼 보자.

'남에게 자기 아버지를 이르는 말.'

그러니까, 선친은 '다른 사람'에게 '자기 아버지'를 가리킬 때만 써야 한다는 얘기다. 아래 기사처럼 쓰면, 당연히, 절대로 안 된다는 뜻.

'최태원 SK 회장의 선친인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은 '10년을 내다보며 나무를 심고, 100년을 내다보며 인재를 키운다'는 신념 아래 지난 1974년 비영리공익재단인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이렇게 쓰면 왜 안 된다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면, 저 '선친' 자리에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를 넣어 보시라.

그러니, "자네 선친/그분 선친"이라고 하는 순간 나는 '자네'나 '그분'과는 배다른 형제가 되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숨겨 놓은 자식이 된다는 걸 명심하시라. 그렇게나 한자·한자말을 계속 쓰고 싶으시다기에 하는 말이지만….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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