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원의 시네아트] 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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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시스트' '오멘' 잇는 정통 오컬트 호러

'유전'. 찬란 제공

우리는 왜 구태여 두려움을 느끼려 극장을 찾을까. 기본적으로 공포영화는 안전장치를 한 가운데 즐기는 롤러코스터에 가깝다. 제한된 조건에서 만끽하는 공포란 얼핏 스릴과 크게 구분가지 않는다. 다만 90분이 넘는 영화의 특성 상 충격을 지속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에 대개의 공포영화는 몇 가지 효과를 뒤섞는다. 여기서 빛을 발하는 게 이른바 서스펜스다. 극적 놀람을 위해 긴장의 분위기를 까는 전조라고 해도 좋겠다. 요컨대 기초적인 공포영화에서 메인은 놀람이고 서스펜스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문다.

'압력' 같은 공포와 서스펜스
인물 반응과 연출에 땀 '흠뻑'

허나 간혹 긴장의 공기가 쇼크 효과를 뛰어넘는 영화들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엑소시스트'(1973)나 '오멘'(1976) 같은 이른바 오컬트 무비다. 실체가 없는 유령, 악령과 맞서는 이들 영화는 쉽게 휘발되는 놀람대신 스멀거리는 안개처럼 걷히지 않는 공포를 두르고 있다. '유전'은 바로 이런 오컬트 호러의 적자라 할 만한 영화다. 애니(토니 콜렛)는 어머니의 죽음 후에 이상한 징후를 느낀다. 어머니의 유령이 아이들을 괴롭힌다고 생각한 애니는 수상한 이웃 조안을 통해 어머니가 비밀스러운 단체에서 활동했음을 알게 된다. 얼마 뒤 자신도 무의식 중 어머니의 행적을 따르고 있음을 안 애니는 딸 찰리(밀리 샤피로)에 이어 아들 피터(알렉스 울프)까지 위협하는 피의 저주를 끊기 위해 그 실체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유전'이 제시하는 공포는 일종의 압력과도 같다. 서서히 늘어나 정신을 차려보면 쉽게 지워지지 않는 강렬한 이미지들을 새긴다. 저주의 대물림 자체는 독특한 소재라 할 수 없지만 영화가 불안을 흩뿌리고 유지해 나가는 방식은 실로 영리하다. '컨저링' 등의 호러영화와 명확히 구분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유령이나 저주 등 초상현상을 소재로 한 영화들조차 그 공포의 대상을 분명히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진정한 불안은 공포의 대상이 무엇인지 알 수조차 없을 때 피어나는 법이다. '유전'은 원인 따위는 제시하지 않고 이에 대한 인물들의 반응만을 쉼 없이 토해내고 쌓아나간다. 트라우마에 지친 인물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던져져 상실, 죄책감 속 실체 없는 불안을 메아리처럼 증폭시킨다. 그리하여 집(혹은 가정)은 가장 불쾌하고 불안한 공간으로 거듭난다.

무엇보다 '유전'은 전통적인 오컬트 호러의 명맥을 잇고 있는 동시에 자극적인 장면과 사운드의 활용 등 최근 할리우드 호러 트렌드도 충실히 구현하고 있다. 신경을 긁은 사운드와 음악, 클로즈업 된 배우들의 경악스런 표정, 간간히 잔혹한 표현들을 뒤섞어 고개를 돌리기 힘든 템포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그 결과 '유전'은 공포(쇼크)를 오락적인 감각으로 소비하는 대신 공포 한 가운데 머물기를 강요한다. 짜릿하게 관통하진 않지만 숨 쉬기 조차 힘든 히스테리의 밀도에 온 몸이 흠뻑 젖을 만하다. 

송경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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