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탈코르셋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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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있었던 의상 코르셋은 '체형을 날씬하게 만들기 위한 옷으로 가슴에서 엉덩이 위까지를 꼭 조이기 위해 옆주름살을 안 내는 대신 고래 뼈나 철사를 넣어 만든 것'을 말한다. 허리와 배를 꽉 조인 상태에서 등을 꼿꼿이 세우면 그만큼 가슴이 도드라지고 '개미허리'가 된다. 당시 사회가 암묵적으로 강요한 여성미가 투영돼 있다. 그런데 이 코르셋이 여성의 몸에 끼친 해악은 상당하다. 조이고, 올리고, 묶고, 두르는 형태로 인해 여성들은 편안하게 숨을 쉴 수도, 똑바로 앉거나 서 있을 수도 없었다. 심한 경우엔 내장기관이 제 위치에서 이탈하는 등 기형적인 신체를 만들기도 했다. 코르셋이 '여성 신체 잔혹사'의 대표주자 격으로 불리는 이유다.

여성 억압의 상징 도구는 코르셋만이 아니다. 1968년 9월 7일 페미니스트 그룹 주도로 미국 애틀랜틱시티에 모인 젊은 여성 400여 명이 여성의 몸을 상품화하는 '미스 아메리카 반대 시위'를 벌였다. 당시 시위자들은 코르셋, 하이힐, 브래지어, 화장품 등을 '자유의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명 '브라 태우기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날 시위는 경찰의 진압으로 생각보다 빨리 해산돼 물건을 불태우는 장면까지는 연출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50년,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도 바뀐다고 한다. 그레첸 칼슨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 조직위원장이 지난 5일 ABC방송 '굿모닝 아메리카'에 출연해 97년간 이어온 수영복 심사와 이브닝드레스 심사를 폐지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최근 국내에서도 '탈(脫)코르셋'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1020세대를 중심으로 짙은 화장 등 '꾸밈 노동'을 거부한다는 의미로 화장품을 부수거나 노 메이크업에 안경을 착용한 인증샷 등을 해시태그(#) 탈코르셋으로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있다. 부산 유락여중 학생들은 하복을 입기 시작하면서 학교에서 흰색 속옷 복장 검사를 하겠다고 하자 '하복을 입을 경우 흰색 브래지어만 착용해야 한다'는 학칙에 문제 제기를 시작했다. "색깔이 있는 속옷이 비칠까" 우려하는 시선도 모르는 바 아니나 "학교가 왜 속옷 색깔까지 정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남녀를 떠나 일상 속 '코르셋' 벗기에 대한 건강한 토론이 이어지길 바란다.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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