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신상 새긴 묘비들, 어떤 '전쟁 조형물'보다 큰 울림
재한유엔기념공원(UNMCK)은 1951년 유엔군 전사자들의 묘역인 유엔기념묘지로 조성됐다. 당시 1만 1000여 전사자가 안장됐으나 각국으로 이장되고 현재 2300명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2007년부터는 전쟁에 참전했던 빈센트 커니 씨의 발의로 매년 11월 11일 11시 이곳을 향해 세계인들은 추모의 묵념(사진)을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 곳곳에는 중앙공원의 충혼탑과 같이 6·25 전쟁을 역사적으로 기념하고 전달하기 위한 많은 건축물과 조형물이 있다. 이처럼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거나 상징하는 일반적 방법은 높은 탑이나 거대한 규모의 건축물을 건립하지만, 재한유엔기념공원에는 넓은 잔디만이 있을 뿐 뚜렷한 상징물은 보이지 않는다.
혐오시설임에도 불구하고 도시 가운데 있는 유엔기념묘지는 공동묘지라는 점을 알지 못한다면 그저 평범한 도심 속 공원이다. 어쩌면 65년간 도심 속 공원으로 묵묵히 남아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이곳이 부산이었지만 부산이 아니라는 점이다.
재한유엔기념공원의 관리 주체는 부산시가 아닌 참전국 11개국의 국제관리위원회로 부산시 행정이 미치지 못하는 장소이며, 또 하나는 6·25전쟁은 우리의 아픈 역사이지만 유엔기념묘지는 우리의 전쟁기억에서 벗어난 장소였다는 점이다.
현재 상징구역, 주 묘역과 녹지지역, 그리고 관리지역으로 구성된 재한유엔기념공원에는 작은 규모의 추모관과 충혼탑만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시설의 규모나 크기는 기념 건축에 미치지는 못한다.
그런데도 주 묘역에 정갈하게 배열된 묘비에 기록된 참전국, 계급, 성명 그리고 18, 19세라는 나이가 보여주듯 젊은 청춘들의 고귀한 희생이 그 의미를 상징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다시 말해, 기록에 의한 역사적 사실과 장소가 갖는 유엔기념공원의 풍경이 더해져 그날의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재한유엔기념공원은 참혹했던 전쟁의 아픈 기억보다는 유엔과 세계협력을 통해 지켜낸 평화의 상징인 동시에 여기에 동참했던 희생자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전달하는 치유의 장소가 되고 있다.
김기수
동아대 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