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글씨 교정' 어떻게] 삐뚤삐뚤 '지렁이 글씨', 반뜻반뜻 바뀔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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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훈민정필 김홍제 원장이 수강생들에게 연필 바로 잡는 법과 손가락 근육을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지도하고 있다. 김병집 선임기자 bjk@

컴퓨터(PC) 문서 작성이 있기 전 공무원 사회에서 필경사(筆耕士)의 위세는 막강했다. 말끔하고 단정한 글씨는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상부 보고서나 회의 자료를 만들 때 필경사의 손이 필요했다. 그래서 늘 그들 책상 앞은 서류를 만들려는 공무원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불시에 명령이 떨어져 갑자기 보고서를 작성해야 할 때는 심지어 급행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컴퓨터가 개인 책상에 설치되면서 이들의 처지는 순식간에 찬밥 신세가 되고 만다. 어제까지 어깨에 힘을 주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귀찮은 존재로 바뀌는 걸 보고는 각박한 세상인심을 실감했다는 어느 전직 공무원의 회고가 귀에 남는다.

필경사 몰락 같은 현상은 공무원 사회만의 일이 아니다. 정보통신기술 발달이 가져온 개인과 조직, 사회 곳곳의 글쓰기 변화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이제는 손글씨의 실종 시대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이 경향을 더 짙게 한다. 이런 시대에 악필을 교정하는 곳이 있고, 수강생이 있다면 시대착오적이란 말이 나올 만하다. 그러나 세상에는 항상 의외성이 존재하는 법. 아무리 타이핑이 대세가 되었지만, 손으로 쓴 반뜻반뜻한 글씨에 대해 느끼는 호감은 여전하다.

자소서 준비 취준생부터
예쁜 글씨 써 보고 싶다는
일흔 노인까지
반듯한 손글씨 매력 여전

형태감 부족 등 원인
집필법 교육·손 근육 강화
교정에 평균 4개월 걸려

"팔 아프고 힘들지만
자신있게 글씨 자랑해요"

■손글씨 실종 시대의 손글씨

악필을 교정하는 '부산 훈민정필'(051-806-1718)의 김홍제 원장은 "예로부터 글씨는 곧 그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고 강조한다. 글씨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어릴 적부터 바른 글씨를 쓰기 위해 무척 노력을 해왔다는 것이다. 옛날 교과 과정에 '습자 시간'이 꼭 있었던 이유였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발달로 손으로 글을 쓸 일이 없다 보니 글씨 쓰기를 제대로 가르치는 곳을 찾기 어렵다. 그 결과 학교와 직장에선 난필과 악필이 비일비재한 실정이다. 주관식 시험 채점을 하다 보면 글씨를 못 알아봐 채점할 수 없는 수준의 학생이 하나둘이 아니라는 교사들의 비명이 엄살만은 아니다. 일명 '지렁이 글씨'가 온 교실 바닥을 기어 다니는 형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상황은 성인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특히 각종 고시 준비생 중에 못 쓰는 글씨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앞으로 이런 사람이 점점 많아질 게 분명해 보인다. 또 신입 사원을 뽑으면서 자필로 된 자기소개서를 원하는 회사가 많다. 이 역시 글씨로 사람의 인성을 파악하려는 의도라는 게 김 원장의 설명이다.

손 근육 사용법 등을 익히기 위한 교재.
■올바른 집필법부터 배워야

글씨 교정의 필요성은 이와 같은 실용적인 측면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먹고 사는 데 바빠서 필체를 고치지 못하다가 나이 일흔이 되어서야 예쁜 글씨를 한번 써보고 싶어서 학원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평생 글씨 모양이 엉망이어서 제대로 남에게 편지 한 장 못 썼던 한 노인의 말이다. 스마트폰 자판을 찍어 보낼 수도 있지만, 자신의 손으로 제대로 된 글씨를 써서 사연을 보내고 싶은 대상이 생긴 것일까.

악필 교정 학원에 다니는 수강생 중에는 아무래도 학생이 다수를 차지한다. '지렁이 글씨'를 보다 못한 부모들이 직접 아이들 손을 잡고 오는 경우다. 대학생들은 대부분 취업을 준비하려고 글씨 교정에 들어간다. 다른 이유 없이 오로지 예쁜 글씨를 쓰고 싶어서 오는 일반인도 꽤 있다고 한다.

악필 교정의 시작은 원인 파악이다. 선천적인 이유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단계다. 형태 감각이 부족해 글씨를 삐뚤삐뚤하게 쓰는 사람이 있고, 바르게 쓰는 방법을 몰라 글씨가 엉망인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서 처방이 달라진다. 가장 기본이 필기구를 잡는 법이다. 파지법을 먼저 배우는 스포츠와 다를 바 없다.

올바른 집필법은 이렇다. 엄지, 검지, 중지 세 손가락으로 필기구를 잡는다. 새끼손가락은 손바닥에 대고 약지는 새끼손가락 위에 살짝 얹는다. 중지는 약지 위에 얹혀 아래 손가락에 의지한다는 기분을 갖는다. 이때 필기구를 잡은 세 손가락의 끝이 삼각형을 이루도록 한다. 초기 교정 때에는 삼각형으로 된 필기구가 좋다.
교정 전후 글씨체 비교. 김병집 선임기자
■팔 아파도 성취감이 더 높아

이렇게 집필법을 가르친 후 손의 큰 근육과 작은 근육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연습을 하게 된다. 본격적으로 글쓰기 연습에 들어가기 전에 사선 긋기, 원 그리기, 세모 네모 그리기를 통해 공간 지각력을 키우기도 한다.

기초 연습이 끝난 후 자음, 모음을 쓰는 과정을 시작한다. 그 후 초성, 중성, 종성의 특징이 있는 한글의 특성을 고려해 균형 있게 글씨 쓰는 연습에 들어가게 된다. 비교적 괜찮게 한글을 쓰기 위해 걸리는 기간은 평균적으로 4개월 정도다. 사람 특성에 따라 교육 기간이 다르기 마련인데 1년이 넘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글씨 교정을 마친 후 이전과 이후 필체를 비교한 사례들을 보면 그 효과가 확연히 나타난다. 글씨 자체가 엉망인 것은 물론이고 연필을 누르는 강약이 뒤죽박죽이어서 아예 알아보기 어려운 글자들이 깨끗하게 바뀐 걸 볼 수 있다. 어린 학생들은 "팔 아프고 힘들었다"는 고충을 빼놓지 않는다. 그런데도 글씨가 예뻐진 후 성적도 올라가고, 성격도 차분해졌다며 성취감을 감추지 못한다.

대학생이나 어른들도 "이제야 남 앞에 내가 쓴 글씨를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게 됐다"며 "아무리 자판기로 글 쓰는 세상이지만, 손글씨의 매력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같다는 감회를 남기고 있다.

이준영 선임기자 gap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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