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산책] 묻혀 살기, 묻어 살기
/김성언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
박 도사님. 소생이 도사님을 뵌 게 대학 졸업하고 여학교 훈도가 갓 되었을 때이니 벌써 사십 년이 훌쩍 넘었네요. 하나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 한들 찔레꽃 향내 짙은 오월의 그 청명한 아침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청량리발 밤 기차로 꼬박 밤을 새워 희방사역에 도착하니 새벽 4시 57분, 능금밭을 몇 개나 지나 소백의 웅자가 아련히 보이는 골짝에 들어서니 정말 비경이 따로 없더군요. 밤새 소주에 전 몸을 잠시 너럭바위에 누이는데, 홀연 물안개 사이로 흰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나타난 상투 어르신. 나중 하산해 동네 어른 말을 듣고 알게 되었지만, 그분이 당시 영주 바닥에 영험하기로 소문난 소백산 박 도사님 바로 당신이셨습니다.
어리벙벙해 있는 일행 중 유독 저에게 다가온 당신은 이리 중얼거리셨지요. "자넨 크게는 못 돼도 장관 한 자리는 하겠어! 부디 은인자중하시게." 그러곤 골무 비슷한 걸 꺼내시더니 제 이마를 세 번 찌르시곤 인홀불견(因忽不見), 오신 것처럼 홀홀 사라지셨습니다. 뒤에 술자리에서 이 말을 꺼낼라치면 다들 낄낄대며 "야, 이 사기꾼아! 웃기지 마라!" 하더군요. 참 어이가 없습니다. 평생을 정직 외길로 살아왔다고 감히 말은 못 하지만 그래도 학교 선생 40년에 나라로부터 근정훈장까지 받은 성실남 아닙니까. 게다가 동행 둘이 엄연한 증인으로, 둘 다 문학박사로 교수까지 했으니 거짓말할 위인들이 아닙니다. 한데 증인 서 달라고 했더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발뺌을 하더군요. 교원이란 게 믿지 못할 자들임을 새삼 느꼈습니다.
만년의 평안 보장하는 상책이자
험한 세상 살아가는 지혜는?
세상 되어 가는 대로 그냥 사는 것
각설하고 지금 굳이 옛이야기를 들춰낸 것이 뭐 도사님의 예언이 틀렸다고 앙탈 부림이 아님을 해량해 주십시오. 물론 옛날 주나라 여상(呂尙)은 강가에서 낚시질하며 세월을 보내다 아흔 살에 문왕을 만나 태공까지 올랐고, 조선 명신 노수신은 19년 귀양살이 끝에 일흔 살에 선조 대왕의 고임을 받아 영의정이 된 사례도 있긴 하지만, 바야흐로 국운이 욱일승천하는 작금에 이 꼰대 노인이 장관 자리에 오르기는 사실상 무망한 노릇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온갖 구설에 휘말려 쥐어뜯긴 오징어 신세가 되느니, 그냥 거실 소파에 죽은 듯 웅크리고 있는 게 만년의 평안을 보장하는 상책일 겁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권세와 부귀에 목을 매는 이 풍진(風塵) 세상을 등지고 고고히 산중에 묻혀 사는 도사님 같은 분이야말로 세상의 부패와 속기(俗氣)를 척결함으로써 만인에게 모범을 보이겠노라는 결기에 가득 찬 영웅임이 분명합니다. 그 결기를 증명해 보이기 위해 서양의 은수자들은 광야에 홀로 굴을 파고 두더지가 되기도 했고, 가시철망을 두른 수십 미터 돌기둥 위에 가부좌하고 앉아 일생을 고행하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멀리 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한국의 영원한 베스트셀러 <토정비결>의 저자이신 이지함 선생은 한강 모래톱에 첨성대 비슷한 흙집을 짓고서 배고프면 머리에 쓰고 다니던 쇠갓을 벗어 우거지 잡탕을 끓여 먹곤 그걸 신선로(神仙爐)라 이름했다지요.
저 같은 속인이야 묻혀 사는 괴로움과 외로움을 어이 견디겠습니까. 또한 옛 비평가들은 산인(山人) 즉 은둔자의 특징을 고고간삽(枯槁艱澁)이라고 지적하지 않았습니까. 표현은 그럴듯하지만, 너무 초연한 척해 다가가기 힘든 데다 사람을 무시하고 신경질을 잘 낸다는 비아냥거림이겠지요. 젊을 때 산중 도사를 자처하는 분들을 만나보았더니 과연 짜증이 많더구먼요. 그 와룡굴을 나오면서, '어부사'의 한 구절을 떠올린 적이 있습니다. 벼슬에서 쫓겨나 강가를 헤매는 굴원에게 한 어부가 이런 노래를 부르지요.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면 되는 것을!" 묻혀 살기도 좋지만 세상 되어 가는 대로 그냥 묻어서 사는 것도 이 험한 세상 견디어 나가는 또 하나의 지혜가 아닐는지요. 그 옛날 소백산에 함께 올랐던 배신자 둘과 시장 주막에 앉아 지금은 비로봉 주목 곁에 산신령으로 정좌해 계실 박 도사님께 합장합니다. 수리수리 마수리 술수리 사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