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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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섭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시작으로 2차 남북 정상회담까지 지난 주말부터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민국 국민은 혼란을 겪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게임을 즐기고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 국민은 답답함을 넘어선 허탈감으로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우리 민족의 운명이 우리 손에 있지 않다는 생각이 남북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처량함으로 이어지고,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껴안는 포옹마저 왠지 과공비례(過恭非禮)처럼 보여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한 것은 평화와 통일의 봄을 외치는 우리의 목소리가 사각의 유리 상자 안에 갇혀 너무나도 작게 들리는 초라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국내에서는 전 대법원장이 법원의 현안을 처리하기 위해 재판 중인 사건을 거래나 흥정의 수단으로 삼으려 했다는 보고가 전해졌고, 특정 모임 소속의 판사들의 성향을 분석한 것은 사실이나, '블랙리스트'는 없었다는 조사 결과에 분노한 판사의 고발 의사가 있었다. 경찰청장은 드루킹 수사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고 인정하면서 사과를 하는가 하면, 최저임금에 상여금을 포함시키는 문제로 노동계가 목소리를 높이고, 경제 상황의 악화로 젊은이들의 실업률은 역대 최고치에 이르고 있다. 시민 400명이 확정한다는 대입제도 개편의 공론화 과정에 대하여는 '제발 그대로 두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심정인 국민이 많다. 늦은 밤 불 켜진 학원들의 불빛을 보면서 아닌 걸 알면서도 어찌 할 수 없는 일들에 끌려가고 있다는 생각에 무기력감을 느끼게 된다.

반전 거듭한 북·미 정상회담
국내 사회·경제 상황은 혼란

우리 운명 스스로 결정 못 하는
답답하고 무기력한 현실

칠흑 같은 밤 거친 뒤에 올
한반도의 밝은 아침 기대


모든 사건이 마치 우주대폭발처럼 우리 속을 헤집고 저 멀리 멀어져 가는 우주처럼 떠나가는 느낌을 받은 지난 주말, 서가에 꽂혀 있던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도보다리의 풍경'을 멋지게 묘사했던 승효상 건축가가 펴낸 <빈자의 미학(Beauty of Poverty)>이라는 책이다. 그 책 서문에는 '가짐보다는 쓰임이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중요하다'는 그의 건축철학을 넘어선 인생철학이 설파되어 있었다. 요즘과 같은 혼란의 시대, 가상현실 같은 게임의 시대에 우리를 다시 한번 원점에 서게 하는 마음 수련의 공안(公案)이다.

묘하게도 그 옆에 꽂혀 있던 <도널드 트럼프-정치의 죽음>이라는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책도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트럼프라는 사람을 들여다보게 하고 그가 쥐락펴락하고 있는 듯한 한반도의 운명을 되돌아보게 했다. 그가 건설한 트럼프월드와 그의 승부사적인 기질, 단점마저도 마케팅의 수단으로 삼아 결국은 브랜드로 만들어 버리는 그의 기괴한 줏대를 통해 알면서도 차마 말하지 못했던 미국 '정치의 죽음'을 속 시원히 외쳐 주는 바람에 미국인은 대리만족을 얻게 되었고, 그는 결국 대통령이 되었다는 역설을 잘 보여 주고 있었다.

두 책을 무릎 위에 내려놓는 순간 불현듯 두 사람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 신문 인터뷰에서 승효상은 문 대통령을 남다른 '문제아'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장애인 친구를 업고 땀을 흘리며 산을 올랐다는 일화를 통해 그가 주변에서 지켜보는 이들을 행동으로 부끄럽게 만든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강준만도 트럼프를 '망나니'라 부르면서, 초등학교 2학년 때 음악 선생님이 음악을 모른다고 주먹을 날린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소동을 일으켜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테스트해 보는 걸 즐겼던 사람이었다. 결국 그는 자신이 빅딜을 즐기는 사람임을 과시하며 일 분 일 초 세계의 모든 시선을 자신에게로 향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문제아'와 '망나니'가 태영호 전 공사의 말대로 '급하고 즉흥적이며 거친' 또 한 인물을 마주하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이 꼭 빅뱅 후에 발생한 블랙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점에서 우린 모든 것이 한 점에서 시작되었다는 대폭발우주론의 창시자 조지 가모프의 글처럼 '더 이상 우주론의 험한 세상에서 허우적거릴 필요가 없게 될' 그날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다시 들춰 본 <빈자의 미학> 본문에는 성경 이사야서가 인용되어 있었다.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라는 애타는 질문에 파수꾼은 이렇게 답하고 있다.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그렇다. 분명코 이 한반도에 모두가 염원하는 아침이 올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칠흑 같은 밤도 반드시 거쳐야 할 것이다. 그리고 희미한 별일수록 흑암을 배경으로 더욱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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