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부산, 이제 도시 비전을 얘기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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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식 문화부장

콜롬비아 제2의 도시 메데인. 마약 카르텔 등 최악의 범죄율을 보였던 이 절망의 도시는 2000년 들어 빈민가에 학교, 도서관 등 공공시설을 하나씩 지어나가는 식으로 변모한다. 케이블카를 설치, 파편화된 산악지대 주민들의 교통 불편도 해소한다. 그로부터 십수 년. 메데인의 범죄율은 70%에서 10%로 크게 낮아진다. 2013년 메데인은 그해 세계 최고의 혁신도시로 선정된다.

'세계가 주목하는 생태도시' 브라질 쿠리치바, 강을 따라 만든 퐁피두 고속도로를 인공해변으로 만들어 시민 휴식공간으로 바꾼 프랑스 파리, 거주 환경이 세계 최악이었던 곳이었지만 자동차와의 전쟁, 자전거 도로와 공원·도서관 건설 등을 통해 지금은 행복 도시로 주목받고 있는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도 있다. 이들 도시의 공통점은 혁신에 준하는 결정과 이에 대한 지속적인 정책이 훌륭한 도시를 만들었다는 것이고, 그 한가운데 혜안을 가진 시장이나 도시건축가가 있었다는 것이다.

주요 혁신·행복 도시 한가운데
혜안 가진 시장·도시건축가 있어

파편적으로 움직이는 도시 부산
민선 7기 시장 시대엔
도시의 정체성 만들어나가고,
부산만의 콘텐츠 개발할
총괄건축가·공공건축가 활용을


이제 보름 남짓 뒤엔 부산은 민선 7기 시장을 맞는다. 하지만 시장 후보자들이 쏟아내는 선거 공약을 보면 '도시 부산'에 대한 도시 계획적 공간 활용이나 이에 대한 고민과 철학, 통찰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좀 잔인한 말 같지만, 시장 후보자들에게 도시의 20년 혹은 50년, 100년 후를 담보할 부산의 도시 비전을 기대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만약 후보 중 제시할 게 있다면, 지금이라도 시민들에게 그 청사진을 기꺼이 보여 줘 평가받았으면 한다.

향후 시민에 의해 선택받은 시장이 부산이란 도시를 제대로 읽어내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럴 능력이 부족하다면 앞서 세계 유수의 도시들이 그랬듯이 기꺼이 도시건축가 같은 전문가의 힘을 빌려 도시 비전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부산에도 총괄건축가와 같은 제도가 필요합니다. 부산은 매우 독특한 지형과 장소적 특징을 가졌음에도 지금까지 무분별하게 건축 형태가 이루어져 왔는데, 이를 중심에서 잡아 줄 일관된 정책과 함께 컨트롤타워도 있어야 합니다." 지난해 9월 기자와 인터뷰했던 승효상 건축가의 고향 부산에 대한 애정 어린 충고는 여전히 생생하다.

좀 늦었지만, 그의 말처럼 이젠 부산에도 총괄건축가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그게 꼭 총괄건축가가 아니어도 괜찮다. 도시건축가나 총괄도시디자이너라 해도 좋다. 지금이라도 이걸 제도화해 파편적으로 움직이는 부산의 도시 재생 사업이나 도시 계획을 전체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도시의 공간 환경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주요 전략 프로젝트들을 발굴하며, 이를 묶고 엮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걸 제대로 해내려면 적어도 부시장급에 준하는 권한과 책임도 아울러 필요하다. 부산시의 각 부서가 추진하는 건축·도시 관련 프로젝트는 너무나 많다. 하지만, 이를 총괄하는 사람이 없으니 각종 프로젝트가 파편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이게 부산이라는 도시의 맹점이다.

이참에 2015년에 도입돼 그동안 별다른 활동을 펼쳐 보이지 못한 '공공건축가' 제도도 활성화되어야 한다. 최근 부산시는 총 36명으로 임기 2년의 2기 공공건축가를 구성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그 역할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아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높다.

1기 때부터 공공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는 한 건축가는 "1기 땐 몇 번의 자문과 회의 정도에 그쳤다"면서 "2기 땐 방향성이나 그 역할 등 공공건축가 제도에 대한 체계적인 운영시스템과 권한이 구체적으로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부산의 근대건축물 복원 시 이들과 논의하고, 진지하게 고민해 그 방향성을 제시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도시는 시장이나 총괄건축가, 공공건축가 몇몇이 만들어가는 게 아니다. 하지만 막혀 있는 곳을 뚫어 줄 '혜안'과 '침술' 역할은 꼭 필요하다. 어쩌면 그게 '혁신'이 될 수도 있다.

낙동강은 친자연적인 공간, 그리고 이를 느낄 수 있는 체험 공간, 동천은 부산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공간, 수영강 변은 문화와 관광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이처럼 이젠 도시의 긍정적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나가고, 이를 바탕으로 부산만의 콘텐츠를 개발할 때가 됐다.

도시를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고 친환경·복지 인프라를 만드는 것은 세계 주요 도시들의 과제다. 민선 7기 시장을 계기로 이제 제대로 된 부산의 도시 비전을 그렸으면 한다. 도시를 탐욕의 대상이 아닌 삶의 터전으로 만들어 줄 그 그림 말이다.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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