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전사에 보내는 승전가] 김도훈 울산 현대 감독 "월드컵 끝날 때까진 울산 박주호 아닌 한국 박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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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월드컵 D-20

한국 대표팀의 김도훈(오른쪽)이 1998년 6월 14일 프랑스 리옹의 제를랑경기장에서 펼쳐진 프랑스 월드컵 본선 E조 조별리그 한국-멕시코전에서 멕시코 골키퍼와 1 대 1 상황에서 슛을 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축구에서 '타깃형 스트라이커'는 '야구의 4번 타자'로 불린다. 특히 미드필드가 취약한 팀이라면 타깃형 스트라이커가 더욱 절실하다. 멀리서 날아온 크로스를 군더더기 없이 골로 연결해 불리한 중원의 전황을 일거에 뒤집을 수 있는 골잡이이기 때문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뛴 박지성과의 인연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했던 네덜란드의 반 니스텔루이가 세계적인 타깃형 스트라이커였다.

1998년 월드컵 멕시코전
1-3 역전패 가장 아쉬워

브라질과 친선전 결승골
아시아 첫 승리 이변 이끌어

팀 주전 박주호 부상 우려
K리그 인천전 휴식 배려
큰 무대서 더 잘했으면…

네덜란드에 반 니스텔루이가 있었다면 한국에는 김도훈이 있었다. 183㎝의 장신에 유럽 선수에게도 밀리지 않는 탄탄한 피지컬, 거기에 킥 자세가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골을 뽑아내는 탁월한 슈팅 능력까지…. 지금은 울산 현대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김도훈 감독은 현역 시절 중계 카메라가 A매치 득점 장면을 비출 때면 항상 문전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한국 축구의 레전드 중 한 선수였다.

■"한국 피지컬도 이젠 세계 수준"

"월드컵이요? 당연히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본선 E조 멕시코전이 제일 먼저 생각나죠. 하석주 선배가 아쉽게 퇴장했던 그 경기 말이에요. 차범근 감독님이 충분한 훈련 일정을 가지고 도전했던 터라 선수들도 기대감이 큰 경기였거든요."

이 경기에서 한국은 멕시코에 1-3으로 역전패했다. 한국 대표팀은 당시 하석주가 선제골을 터트렸지만, 득점의 기쁨을 누릴 사이도 없이 불과 3분 만에 백태클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퇴장당해 결국 무너졌다. 경기를 바라보던 온 국민이 가슴을 치던 순간이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네덜란드를 만나 0-5으로 참패했다.

그러나 프랑스 월드컵은 김도훈 감독에게 큰 깨달음을 줬다. 당시 필드 위에서 네덜란드 선수와 몸으로 부딪혔던 그는 경기 초반 강한 중거리 슈팅을 날리는 등 자신감이 충만했다. "우리는 전반전부터 느낌이 좋았고, 자신감도 있었어요. 비록 패하긴 했지만 몸으로 느낄 수가 있었지요. '한국 축구가 해외 선수와도 대등하게 경기를 해볼 만한 수준까지 왔구나' 하고요."

2000년 11월 전북 전주공설운동에서 벌어진 프로축구 K리그 준플레이오프 전북 현대-부천 SK전에서 전북 김도훈(오른쪽)이 상대 수비를 뚫고 슛을 시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수 김도훈'이 가장 빛났던 시절은 바로 이듬해인 1999년 3월 서울에서 벌어진 브라질과의 친선전이었다. 이 경기에서 김 감독은 후반 45분 경기가 끝나기 직전 극적인 결승골을 넣었다. 중원에서 홍명보가 뿌려준 패스가 최성용에게 이어졌고 곧바로 김 감독에게 크로스가 날아들었다. 재빨리 브라질 수비수 셋이 에워쌌지만 김 감독은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서도 오른발로 슛을 날려 철벽같던 브라질의 골망을 흔들었다.

김 감독의 이 결승골로 한국은 사상 최초로 브라질에 1-0 승리를 거뒀다. 비록 친선경기였지만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브라질을 꺾는 파란을 일으킨 터라 김 감독의 골은 당시 큰 화제가 됐다.

■"박주호는 내 선수이자 대표팀 선수"

이후로도 정상급 공격수 자리를 지켜왔던 김 감독은 거스 히딩크 감독과의 성향 차이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부름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꾸준히 월드컵에 출전하는 후배들을 바라봐온 그의 시선은 이번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도 따스함을 잊지 않고 있다. 더 나아가 일취월장한 기량을 갖춘 후배들이 어깨를 펴고 당당히 세계와 맞설 것을 주문하고 있다.

"우리 때는 월드컵 무대에 선다는 것만 생각해도 긴장이 정말 많이 됐어요. 가진 실력 이상의 무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막상 나가서 몸으로 부딪혀보니 '손 닿지 않을 정도로 아주 멀리 있는 무대는 아니었구나'라고 실감하게 됐죠."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뒤에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해외 정보가 풍부하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당시 해외 선수에 대한 정보라면 겨우 일본 선수 정도였어요. 유럽 선수 정보는 언감생심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어때요? 매일 매일 중계 영상을 통해 해외 선수의 플레이를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잖아요. 우리도 경험을 쌓았고, 이에 대한 대비도 있다면 이번 월드컵 결과도 그렇게 비관적이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김도훈 감독
김 감독 입장에서는 이번 러시아 월드컵은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울산 현대 김광국 단장이 지난 겨울 야심차게 영입한 박주호가 신태용호에 승선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K리그로 유턴한 박주호는 울산 입장에서는 '롯데의 이대호' 만큼이나 '티켓 파워'를 갖춘 자원이다.

하지만 김 감독은 그런 박주호를 지난 20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K리그1 경기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월드컵 본선에 나설 수비 자원이 잇달아 부상으로 쓰러진 것을 바라본 김 감독이 휴식을 명한 것이다.

울산 입장에서는 이 경기가 중상위권 경쟁에서 더할 나위 없이 중요했다. 그러나 그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결정을 내렸다. 이제 러시아 월드컵이 끝날 때까지는 '울산의 박주호'가 아니라 '대한민국 대표팀의 박주호'라는 김 감독의 따뜻한 배려였다.

"우리 박주호가 뽑혔으니 큰 무대에서 더 잘하고 자신감을 충전해 왔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아니 후배들 모두가 다 잘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누가 뽑히든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가는 선수들이니까. 내 등에 대한민국이 업혀 있다는 생각으로 자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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