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기술의 문화사' 눈 깜박하면 변하는 과학기술, 어떻게 다룰까?
20세기 기술의 문화사/김명진
<20세기 기술의 문화사>는 과학기술과 대중문화 사이의 관계를 탐색한 책이다. 저자는 "미래 예측이 잘 들어맞은 경우보다는 터무니없이 틀린 경우가 오히려 더 많았다. 그렇다면 그런 미래 예측은 누가 어떤 이유에서 계속해서 내놓는 것일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미래기술의 논의들은 보통 엄청나게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양극단으로 제시되곤 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로봇 등 미래기술 역시 풍요롭고 편리한 생활과 전례 없는 경제 도약을 약속할 것처럼 얘기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기술들이 인간의 자리를 빼앗는 원흉인 것처럼 입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이런 극단적 미래 예측은 틀릴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핵·우주개발·로봇·인공지능 등
과학기술과 대중문화 '접점' 다뤄
'인간에 도움' vs '인간을 지배'
인공지능에 대한 극단적 전망
영화·소설 등 대중 매체에 반영
"기술 둘러싼 논쟁 양극화 되면서
다양한 입장이 설 자리 잃어"
이 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롭게 등장해 오늘날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네 가지 기술인 핵, 우주개발, 로봇·인공지능, 생명공학의 사례 연구를 통해 이 같은 질문에 답하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지난 100여 년 동안 새롭게 등장한 대표적인 과학기술이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와 얽히면서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해 나갔는지를 추적한 연대기인 셈이다.
특히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20세기를 주름잡은 주요 과학기술들과 대중문화의 접점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기술 분야는 전문성이 있는 영역이기 때문에 일반 대중으로부터 이 분야에 대한 이해를 얻기 위해서는 대체로 신문, 잡지, 소설, TV, 영화, 광고와 같은 대중 매체들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런 매체 속 과학기술의 모습과 이미지를 들여다봄으로써 일반 대중과 당대의 주요 기술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선 핵기술은 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원자폭탄의 발명 이후 냉전 시기에 미국과 소련의 엄청난 핵 군비경쟁과 수소폭탄 개발 속에서 사람들의 뇌리에 핵전쟁의 공포로 자리 잡았다. 1950년대에는 핵기술을 핵발전이나 교통수단, 토목공사, 의학 등에 평화적으로 이용하려는 아이디어도 넘쳐났다. 물론 이런 현상을 다룬 대중문화 텍스트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까지는 미국과 소련 간의 우주 전쟁이 본격화한 시기였다. 우주개발에 대한 대중들의 흥분과 관심도 높아졌다. 하지만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하면서 우주기술에 대한 열광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2차 세계대전기 포탄의 탄도 계산을 위해 최초의 디지털 컴퓨터인 에니악이 발명된 이후 인공지능(AI)에 대한 강한 낙관과 비관의 전망들이 대립했다.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사람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의 한편으로 기계가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양산됐다. 그런 엇갈린 전망들이 소설, 영화, 희곡 등 다양한 대중매체에 반영돼 나타났다.
최초의 시험관 아기 루이스 브라운의 탄생을 보도한 주간지 <타임> 표지,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기술실업'에 대한 우려를 담은 1930년대의 만평, 디즈니랜드 '미래의 나라'에 설치된 TWA 달 정기 왕복선(왼쪽부터). 궁리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