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북·미 정상회담 가능할까?
/임석준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개최하기로 날짜와 장소까지 잡은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정상회담이 최근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핵 문제와 한반도 평화에 대해 협조적으로 나오던 북한이 갑자기 강경한 방향으로 태도를 바꾸었다. 북한은 한·미 공군의 합동 군사훈련 '맥스선더'를 문제 삼아 남북 고위급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하였고, 미국을 향해선 '일방적인 핵 포기를 강요하면 북·미 정상회담을 재고할 수 있다'고 하였다.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현장을 한국,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등 5개국 기자단에 공개하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아무런 설명 없이 우리 측 기자단의 방북을 거부하다가, 마지막 순간에야 수용했다. 그리고 2016년 탈북한 여종업원들을 송환하라고 요구했다.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할 온갖 핑곗거리를 찾는 모양새이다.
그동안 협조적으로 나오던 북한의 태도가 왜 갑자기 돌변한 것일까? 첫째는 중국과 북한의 정상회담이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발휘했고 북한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였지만, 최근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한반도 문제에서 소외되고 있었다. 이러한 '차이나 패싱'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두 차례나 중국을 방문했다. 그런데, 시진핑을 두 번째 만난 후 북한은 갑자기 남북 고위급회담을 취소하고 북·미 정상회담마저 재검토할 수 있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회담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사회주의 국가의 특성 때문에 김정은-시진핑 사이에 정확히 어떠한 말이 오갔는지 알 수 없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포괄적 비핵화를 합의하면, 비핵화 중간 단계에서 중국이 경제 지원을 해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이 어떠한 선택을 하든지 '중국이 북한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분명하다. 중국이 뒤를 봐준다는 보험을 확인한 북한이 좀 더 강한 블러핑(엄포) 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난관 처한 비핵화 정상회담
북한 태도 돌변한 이유 뭘까
미,'이란 핵 협정' 탈퇴 신뢰 저하
'중국 뒷배' 믿고 엄포 가능성
지지세력 많아야 협상에 유리
적 늘리는 트럼프 행보 아쉬움
둘째, 지난 8일 이루어진 미국의 이란 핵 협정 탈퇴는 미국의 '약속'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켰다. 2015년 6월 이란과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은 '이란이 핵 개발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대신 국제사회가 대(對)이란 제재를 완화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핵 협정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 협정만으론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며 재협상을 요구해 오다 결국 일방적 탈퇴를 선언했다. 트럼프는 오바마 정부가 이란과 어설픈 협상을 했다고 주장하며, 더 강력한 핵 합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란과의 협정 탈퇴한다고 했다.
트럼프 정부는 이번 합의 파기로 '불충분한 합의는 수용할 수 없다'는 경고 메시지를 북한에 전하려 하였다. 미국은 이란 핵협정 탈퇴 선언을 북한 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지렛대로 삼겠다고 했다. 특히 매파로 알려진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불충분한 합의는 수용할 수 없다는 신호를 북한에 보내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북한이 받은 메시지는 미국의 의도와는 전혀 다를 수 있다. 이란 핵 협정이 아무리 '재앙적이고 끔찍한 협정'이었을망정, 트럼프는 전임 대통령이 맺은 국가 간 협약을 후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매우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 특히 핵 포기를 조건으로 체제를 보장받고 향후 수십 년을 권좌에 머물길 원하는 갓 30세를 넘긴 김정은은 '4년마다 선거를 치르는 미국 대통령과의 협정이 과연 유효할까'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2015년 오바마가 한 약속을 트럼프가 지키지 않는다면, 2018년 트럼프가 한 약속은 누가 지킬 것인가?
트럼프 대통령은 스스로를 협상의 귀재라고 생각한다. 좋은 협상을 하려면 주변에 나를 지지하는 세력이 많아야 유리하다는 것은 자명한 진리이다. 그러나 최근 트럼프의 행보는 친구를 적으로 돌리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와의 갈등은 따로 떼어 놓더라도, 트럼프는 이란 핵 협정 탈퇴와 철강 관세 폭탄으로 전통적 지지 세력인 유럽연합(EU)마저 적으로 돌리고 있다.
'EU 대통령'으로 여겨지는 EU 상임의장 도널드 터스크는 최근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로 EU에 위협을 가하고 이란 핵협정으로부터 탈퇴한 트럼프를 빗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최근 트럼프가 내린 일련의 결정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따위가 친구라면 과연 적이 필요할까?(With friends like that, who needs enemies?) 솔직히 말해 유럽은 트럼프에 감사해야 한다. 그 덕분에 우리는 모든 환상에서 깨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