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칼럼] 페미니즘이 불편한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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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논설위원

2016년 5월 17일, 30대 남성 김 모 씨는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의 공용 화장실을 이용하던 20대 여성을 흉기로 살해했다. 그것도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강남역 여성 혐오 범죄'가 일어난 지 2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좀 더 안전해졌을까를 묻는다면 '아니올시다'다. 여전히 여자 혼자서 밤길을 걷는 게 두렵고, 낯선 건물 화장실이라도 이용하게 되면 누군가를 입구에 세워둬야 마음 편하고, 칸막이 화장실 안에 들어서서는 몰래카메라라도 없는지 두리번거리게 된다. 대검찰청 집계로 지난해 여성이 피해자였던 강력범죄(살인·성폭력)는 총 3만 270건으로, 2016년 2만 7431건보다 10%가량 늘어났다. 2년 전 수많은 강남역 추모 포스트잇 중 여러 개를 장식한 "나는 운 좋게 살아남았다"는 고백이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로 이어지게 한 이유다.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그나마 긍정적인 신호라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 폭력과 성차별적인 일상에 대한 문제 제기가 두드러진 점이다. 페미니즘이 한국 사회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여성들의 각성이 커진 점도 고무적이다. 올해 일어난 미투(#MeToo) 운동 역시 그 연장선이 아닐까 싶다. 다만, 미투는 피해자들이 가까스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과 달리 가해자 처벌이 미덥지 못하고, 2차 피해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했다. 가해자 몇 명을 처벌하는 수준이 아닌, 근본적인 개혁을 이루지 못하면 미투는 앞으로도 계속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게 됐다.

'강남역 여성 혐오 범죄' 2주기
여성 자각, 미투 운동으로 번져

폭력·성차별적 일상에 문제 제기
일부 남성 '여혐 반격' 징후 우려

일상 민주주의 다 함께 누리려면
남녀 성 대결 아닌 연대 실천해야


염려스러운 징후는 또 있다. 일부 남성의 '백래시'(backlash·반격)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모바일 게임 '벽람항로'를 작업한 9년 차 프리랜서 원화가인 '나르닥' 작가는 게임 유저들이 붙인 '메갈'(남성 혐오을 조장하는 극단적인 페미니스트) 프레임에 결국 계약 해지됐다. 또 다른 게임 업체의 여성 직원은 여성단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팔로 했다는 이유로 회사 대표에게 지적을 받았다. 페미니즘 행사라는 이유로 장소 대관이 취소되고, 페미니즘 셔츠를 입었다고 아르바이트에서 해고됐으며, '소녀는 뭐든 할 수 있다'(Girls Can Do Anything)는 문구를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나 상태 메시지에 올렸다가 동아리에서 쫓겨났다.

이런 중에도 일부 남성은 말한다. 여성 혐오가 어디에 있느냐고. 이젠 남자가 더 살기 힘든 사회라고.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를 펴낸 최승범 교사가 들려준 말이다. "그런 분들 다 같이 모여 러시아 한번 가보시면 좋겠다. 늦은 밤 길거리를 누비다 생명의 위협을 느껴보도록. 현지인 친구에게 인종차별 때문에 밖에 나가기가 무섭다는 하소연을 했다가 '요즘 세상에 인종차별이 어디 있냐'는 핀잔을 들어보도록. 모든 백인이 그런 건 아니니 일반화하지 말라고, 자신을 욕하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는 친구의 말을 들으면, 그럼, 아니 그래야만 당신도 여성들의 공포와 분노에 공감할 수 있을까?"

최근 불법 촬영으로 물의를 일으킨 홍익대 모델 사건만 해도 그렇다. 분명 '잘못된 수사'는 아닌데 '편파'와 '성차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불법 촬영물 피해자의 98.4%에 이르는 여성 사건 수사는 지지부진한 데 비해 남성 피해자 사건은 신속하게 처리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불법 촬영 영상물 유포죄의 경우 벌금형이 70%나 되고, 그나마도 300만 원 이하로 턱없이 낮은 처벌 수위도 여성들을 분노케 했다. 오죽했으면 청와대 게시판에 오른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합니다'라는 국민 청원에 35만 77657명이 서명했다.

남녀고용평등법에 '성희롱' 관련 조항이 생긴 지 19년이다. 사회의 변화는 여전히 더디다. 특히 문화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를 이끈다는 점에서 성 평등은 정말 중요하다. 최 교사도 "페미니즘은 이전과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한다"면서 "무조건 참지 않아도 되고, 잘못된 쪽은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기에 남성에게도 유용하다"고 강조했다. 불편하지 않은 변화는 없다. 촛불 광장에 함께 섰던 여성들이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이 나아지길 원했듯, 일상의 민주주의도 남녀 모두가 누렸으면 하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를 선언한 문재인 대통령도 언급했듯 '우리에게도 대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 출발점으로 남녀가 연대하는 페미니즘이면 어떨지 감히 제안해 본다.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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