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 대학의 길] 10. 경성대 송수건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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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는 결국 문화·예술의 몫… 인문학·공학 함께 가야"

경성대 송수건(67) 총장은 "그동안 대학은 백화점이 되려고 애썼고, 지어만 놓으면 (학생이) 온다고 생각했다"며 "이제는 작지만 강해야 살아남는다"고 강조했다. 송 총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문화예술, 인문학의 강점을 살려 경성대를 강소대학으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종회 기자 jjh@

팔을 쫙 벌려 그늘을 만든 느티나무들이 손님을 반겼다. 오르막길에서 숨이 찰 무렵, 첫 이정표가 예노소극장과 콘서트홀을 안내했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저만치에 콘서트홀과 예술관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10일 오전 부산 남구 대연동 경성대에서 만난 송수건(67) 총장은 "우리 대학은 문화예술 분야가 강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러고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문화예술 분야가 어떤 의미가 있고, 또 그것이 인문학·공학과 어떻게 손잡을 수 있는지 들려줬다.

불확실성 높은 시대 한계 많지만
학생들, 변화 속 문제해결력 필요

'작지만 강한' 대학 지향점
문화예술 분야 강점 살려 교육
창의적이고 즐거운 협력 강조

'CKS' 사업 지속 투자에
미래 대비 학과 구조조정도 단행

■배우는 방법을 배우자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어려운 숙제를 받았습니다." 송 총장의 표현이 재미있다. 불확실성. 송 총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가장 큰 고민을 이 한 마디로 정리했다. "당장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래를 예측해 그에 필요한 지식을 교육한다는 것은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우수한 학자가 많아도 불가능합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의 '속도'에 대해서도 놀라워했다. "4차 산업혁명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게 2016년 다보스포럼이었습니다. 불과 2년 전이지요. 생소했던 단어가 지금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화두가 되었습니다."

송 총장은 옥스퍼드대 마이클 오스본 교수의 <고용의 미래>라는 보고서를 인용했다. 그는 "700개 넘는 직업을 분석해 20년 안에 사라질 것을 지목했다"며 "학생들이 졸업하고 학교를 떠나면 새로운 지식들이 쏟아져 나올 텐데 그것은 또 어디서 배우겠느냐"고 반문했다. 그 책은 10~20년 후 미국 총고용자의 47%가 컴퓨터나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러모로 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위기다.

대안은 뭘까. 송 총장은 "변화에 적응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스스로 배우는 방법을 터득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제 '가르친다'는 말 자체가 적절하지 않습니다. 변화 속에서 필요한 지식을 찾아내고 문제를 해결하는 자신만의 학습법을 터득하도록 학생들을 이끌어야 합니다. '목적 지향'의 지식과 동료를 찾아 엮어내는 능력도 관건입니다." 경성대가 문제 중심 학습법(PBL·Problem Based Learning)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송 총장은 "교수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학습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라며 "PBL의 'P'는 프로젝트로도 바꿔도 무방하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4차 산업혁명을 무작정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게 송 총장의 생각이다. 그가 예로 든 것이 DOS(disk operating system). "많은 분들이 기억할 것입니다. 윈도우 체제가 나오기 전에는 컴퓨터를 사용하려면 까다로운 DOS 명령어를 공부해 일일이 입력해야 했지요. 윈도우가 나오면서 복잡한 DOS를 모르는 사람도 간단하게 마우스를 클릭함으로써 온갖 컴퓨터 작업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송 총장은 "기술적 현란함에 전혀 주눅들 필요가 없다"며 "대부분은 새로운 기술을 누리고, 각 분야에서 이를 활용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용기를 줬다.

■작지만 강한 대학

"백화점식 대학 교육은 끝났습니다." 송 총장의 화제는 대학으로 옮겨갔다. "그동안 대학은 백화점이 되려고 애썼고 로비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지어만 놓으면 (학생이) 온다고 생각했지요. 이제 잘하는 것만 열심히 하면 됩니다. 작지만(Small) 강해야(Strong) 살아남는(Survive) 것이지요." 그렇다면 경성대는? 송 총장은 "우리는 문화예술 분야에 강하다"고 힘줘 말했다. 실제 경성대 예술대는 공대 다음으로 크다. 음악, 디자인, 연극영화, 영상애니메이션, 사진 등 11개 학과·부를 두고 있다. 배우 조진웅와 김정태, 개그우먼 김현숙 등 경성대 출신 유명 인사가 많다. 안권태, 전수일 등 영화감독도 배출했다. 최근 미투 논란을 겪었지만 배우 조재현도 동문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왜 문화예술일까? 송 총장의 소신은 확고했다. "결국 창조는 문화와 예술이 담당합니다. 여기에 인문학과 공학이 같이 가야합니다. 흔히 생각하듯 공학만으로 미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맥락에서 송 총장은 '감성지수(EQ·Emotional Quotient)'를 역설했다. 송 총장은 "자기통제, 긍정적 사고, 소통·공감 능력과 밀접하다"며 "자연지능이 인공지능을 이기려면 창의적이고 즐겁게 협력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예술 분야의 강점을 살려 시범 도입한 것이 'First year art program'. 1학년 학생에게 영화, 사진, 합창 따위를 골라 배우게 하는 것이다. 송 총장은 이를 '쪼개 배우기'라고 표현했다. "예를 들면 '바이올린으로 1곡 연주하기'가 있습니다. 비록 얇지만, 각자 악기를 하나씩 배움으로써 다른 것과 융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지요. 두루 공부할 수 있는, 창조성과 통합교육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굳이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가 안 되더라도 전혀 상관 없습니다."

■구조조정과 특성화

경성대는 '작지만 강한 대학'으로 변모 중이다. 문화예술, 인문학, 공학 등을 중심으로 특성화를 시도한다. 지난해부터 도입해 올해로 2차 연도를 맞는 'CKS'(Challenge KyungSung) 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미래를 받쳐줄 기둥을 발굴·육성하자는 것이다.

지난해 1차 연도에는 빅데이터, 게임·VR, 동아시아 융합 문화콘텐츠 등 8개 사업에 4억 4000만 원을 지원했다. 올해는 5개 사업에 1억 원이다. 미래 수요에 맞춰 학과 구조조정도 했다. 새로 생긴 것이 기계자동차공학전공, 제약공학과, 심리학과, 뮤지컬전공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이 심리학과다. 부산 지역에서 이 학과를 둔 대학은 부산대가 유일했다. 송 총장이 이유를 설명했다. "인공지능의 시대에는 '인간상실'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될 것입니다. 심리학은 자체로 중요하고, 응용 분야도 많아 수요가 끝이 없을 것입니다." 뮤지컬전공은 문화예술분야의 강점을 살린 것이다. 앞으로 인문학과,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기술을 접목하는 쪽으로 고민할 예정이라고 송 총장은 밝혔다.

고통도 있었다. 최근 몇년간 학생 정원의 10%를 줄였는데, 무용학과와 교육학과의 폐과가 대표적이다. 송 총장은 "입학생이 부족하다 보니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라며 "무용학과는 뮤지컬 전공과의 연계도 고민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런 과정을 거쳐 교육혁신에 속도가 붙으면 몇 년 안에 과거에 알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경성대를 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적이 기대가 됐다. 김마선 기자 edu@busan.com

■ 송수건 총장은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경남고와 서울대 행정학과를 나와 미국 조지아주립대에서 행정학 석·박사 학위를 땄다. 조지아서던대와 웨스트버지니아주립대에서 행정학과 조교수로 강의했다. 미국 테네시주 미드아메리카 침례신학교로 옮겨 신학을 공부한 뒤 교수로서 대학평가처장과 부총장을 역임했다. 2011년 10월 경성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이례적으로 총장으로 오기 전 경성대 재직 경력이 전무하다. 그는 "경성대와 인연이 없어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볼 수 있는 장점도 있다"며 "미국 대학에서 평가 책임자로 일해 교육과정, 교원, 시설 등에 대해 잘 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25년을 지낸 송 총장은 "아직도 (한국생활에) 적응 중"이라며 "사람들이 맨정신으로 살아가는 게 정말 신기할 정도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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