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항만 때문에… 항만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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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충 해양산업연구소장 한국해양산업협회 사무총장

부산시의 해양 관련 예산은 전체의 1.2%에 불과하다. 부산신항이 완공되면 전체 항만부지의 31%만 부산시 몫이 된다. 그때 신항 배후단지는 고작 28%가 부산시 경계 안에 위치한다. 국내 최대 규모의 무역항이 부산에 있다는 교과서 내용은 어쩌면 곧 수정돼야 할지 모른다.

김기영 부산시 경제부시장은 올 2월 부산항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부산시가 배 한 척조차 운항을 허가할 수 없는 처지를 한탄했다. 한탄에는 '중앙권한의 이양'을 바라는 마음이 절절히 담겼다. 그는 "부산시가 부산항을 위해 많은 것을 하고 싶지만 권한이 없다"면서 해수부를 탓하기도 했다. 그러나 회의를 주재한 이재균 위원장은 "수단이 없다고 정말 할 게 없는 것은 아니다"면서 "하나하나 검토하지 않았을 뿐, 지금의 법적 지위로도 할 것이 많다"고 되받았다.

부산은 항만 '때문에' 기형적 발전
그러나 항만 '덕분에' 성장한 도시
타 도시 견제 대신 협력 이끌고
부산 온 국가기관 손잡고 재도약을


그는 배후단지만 하더라도 부산시가 앞장서서 기업의 애로사항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면 나중에 배후단지 활용에 따라 오히려 항만정책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역발상을 제안했다. 권한이 아니라 역할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질책이었다.

김 부시장은 올 3월 서병수 부산시장을 대신해 해양수도정책심의위원회를 주재했다. 그 자리에서 해양자치를 줄기차게 외치면서 부산발전연구원이 내놓은 12개 분야의 사업 수행을 강조했다. 해운, 항만, 수산, 조선 등 걸치지 않은 해양 분야가 없었다. 부산만이 다 할 수 있고,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의욕이 넘쳤다. 하지만 의욕은 과욕처럼 비쳤다. 이를 의식한 듯 최성호 부산항만물류협회장은 "2030년까지 수립된 정부 기본계획과 어떻게 다른지, 엇박자는 없는지를 먼저 들여다보자"고 제안했다. 이정기 한국선급 회장도 "부산이 모두 할 것이 아니고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해양수도는 중요한 화두다. 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정치적 함의를 놓치면 곤란하다. 부산의 해양수도론은 분권에 뿌리를 박은 해양자치다. 중앙집권이 가진 폐해를 해양분야에서만큼은 덜어 보자는 것이다. 해양수도가 해양과 관련한 모든 권한을 서울처럼 부산에 집중하자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해양수도론에 대한 다른 도시의 반발이 크다. 인천은 대놓고 견제하고 있다. 얻는 것도 없이 견제만 당하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부산은 이미 신공항 유치 경쟁에서 다른 도시의 견제를 충분히 겪었다. 그때도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고, 후유증은 아직도 남아 있다.

갈등의 해법은 구호가 아니라 스킨십이다. 다른 도시와는 물론이고 해양수산부와의 스킨십도 절실하다. 부산시가 해양수도를 만들자고 의논하는 회의에 정작 키를 잡고 있는 중앙정부 관계자를 초청하지 않은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해양국가와 해양수도는 다른 개념이 아니다. 해양국가 속에서 해양수도는 빛을 발할 수 있다. 부산시와 해수부는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해양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해수부에 일차적인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부산시는 좀 더 유연할 필요가 있다.

부산시 의도와 다른 곳에 사무실을 차린 해양진흥공사와도 같은 맥락에서 소통이 요구된다. 영도 동삼동 해양 클러스터는 좀 더 포괄적인 스킨십이 필요하다. 클러스터의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부산시가 자임하고, 스스로 손을 내밀어 지역 헌신 프로그램 개발을 요청해야 한다.

부산은 항만 덕분에 성장했다. 하지만 항만 때문에 기형적 도시가 됐다. 해수부와 부산시가 손잡은 '북항 통합개발론'은 그래서 의미가 더 크고 시민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는다. 해양수산부의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은 부산만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부산을 위한 것은 틀림없다. 그 핵심에 해양진흥공사가 있다. 해양진흥공사와 해양 클러스터가 부산에 온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이들을 제대로 활용하는 데 부산시는 '열정'을 보여야 한다.

cho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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